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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손신영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미술사 제57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65 - 89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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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명부전은 1855년 시왕전으로 창건되었으나 1894년 중건 당시 개칭된 것으로 보인다. 창건은 당대 최고 권력자 김좌근의 애첩 나주 양씨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894년 중건공사에는 150여 명이 시주하였는데, 시주물목에 건축부재가 수록되어 있어 주목된다. 건축장인은 중건기록에 구체적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이중 니편수 마백룡이 1902년의 경운궁 중화전 중건과 1904~1907년의 경운궁 중건에 개와편수로 참여한 바를 확인하였다. 19세기 중반기 이후로는 경복궁 중건공사를 비롯한 각종 관영 공사가 이어져 수많은 장인들이 활동했다. 이들은 관영 공사 종료 이후, 건축유형을 가리지 않고 공사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활동 양상은 건축형식에 영향을 미쳐, 흥천사 명부전을 비롯한 19세기 근기지역에 조성된 불전들에 궁궐건축 요소가 등장케 하였다. 흥천사명부전에서는 궁궐과 관아 등에서 주로 보이던 새부리 형태의 익공형식이 결구 된 것을 비롯하여, 다듬은초석·낙양각·교창·운궁형첨차·지붕의 취두 등이 궁궐건축적 요소이다. 이밖에 정면의 모든 기둥에 용두가 결구되고, 배면 운공의 봉두·낙양각 아랫부분의 용두·주칠 바탕에 금색으로 세로로 글자가 쓰여진 편액·편액의 봉에 용두조각이 있는 점 등은 흥천사명부전만의 특징이다. 1894년 흥천사명부전 중건은 왕실원찰로서 창건 당시의 위상을 되찾은 흥천사의 정체성을 다시 천명하는 계기로 볼 수 있다. 건축적으로는 당시 부불전의 보편적 요소에 궁궐건축 조형요소가 다수 채택된 불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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