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성한 (조선대학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69호
발행연도
2018.2
수록면
99 - 128 (3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한국고대사에서 고조선의 이동은 재난과 그 재난에 대한 피난 활동이었다. 고조선은 전국 연의 침공을 받아 오늘날 하북 노령현 일대에서 오늘날 요하바로 동쪽으로 그 중심지를 이동하였으며, 중원을 통일한 진의 침공을 받아재차 그 중심지를 동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고조선이 최종적으로왕험성에 도읍을 하였던 것이다. 학계는 중국 당나라 사람이 고조선의 왕험성을 고구려의 평양성과 동일 지역에 위치하였다고 보는 인식에 기초하고, “평양에 도읍을 두었는데, 장안성이라고도 한다”는 중국 사서의 기록에 근거하여, 왕험성의 위치를 오늘날의 평양지역에 비정하고 있다. 하지만 낙랑군의 존속하였던 시기에 처음 축성된(247년) 평양성은 낙랑군이 물러난 이후에 증축되었으나(334년), 수도가 되고(427년) 수도가 장안성으로 옮겨질 때까지도(586년) 그 위치를 옮긴 적이 없었다. 북위 사람 역도원이 고구려 사신으로부터 직접 들은 정보에 근거한 515~524년경의 기록에따르면, 왕험성이 위치한 고구려의 평양성과 낙랑군 조선현은 동일 지역이 아니라, 浿水를 따라 각각 동과 서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고조선의 도읍왕험성,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 낙랑군의 치소 조선현은 오늘날 평양지역에위치하였을 가능성이 없다. 오늘날 평양지역에서 발굴된 고구려의 長安城은 중국 사서에 언급된 平壤 城?國內城?漢城 3京의 하나인 漢城일 가능성이 크다. 漢城은 중국 사서에 보이는 반면에 우리 사서에는 축성에 관한 내용이 확인되지 않는 반면, 長安城 의 축성 내용은 확인된다. 게다가 漢城은 國名, 長安城은 漢의 도읍명이라는관계도 주목해야 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