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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훈평 (동신대학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84호
발행연도
2021.11
수록면
257 - 280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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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변씨 효량공파는 조선후기의 의학 관료를 구성하는 대표적 가계였다. 조사된 가계 내의 의관은 총 88명이였다. 본 연구에서 다음과 같은 논지를 도출해냈다. 첫째, 의관 가계로서 17세기 중반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18세기 중후반 이후19세기 후반까지 전성기로서 일정한 지위를 유지하였다. 효량공파 가계 내 의관은 변이근ㆍ변이형 형제가 처음이었다. 정조 순조 대에 활동한 의약동참의 변관해와 변지순은 숭록대부와 정헌대부가 되면서 의관 가계로서 입지를 탄탄하게 하였다. 둘째, 사조 분석을 통해보면, 의관 가계로서의 세전 양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효량공파의 경우 사조 중에 역관이 많이 있기 때문인데, 효량공파는 조선후기 주요한 역관 가문의 하나로서 후손들이 의과에만 치중하지 않고 역과로도 출사하였다. 셋째, 대부분의 의학 관료는 삼의사에 속하였다. 최종 관력이 삼의사에 해당하는 이들은 총 86명으로 전체(88명)의 97.72%이다. 이는 가계 내 인물이 의학을 본업으로 할 경우 대부분 삼의사에서 근무할 수 있었음을 뜻한다. 조선후기 의관이 단순히 실력만으로 되지 않는 현실을 반영한다. 넷째, 내의원에서의 가계 위상은 19세기 중반 이후로 더 높아졌다. 효량공파 내의원 입사자는 19세기 중반을 기준으로 변화된다. 주요한 입속방법이 19세기중후반 의약 동참의와 내침의에서 내의로 바뀐다. 내의원의 三廳이 모두 의술이 높은 이들이지만 삼청의 첫째는 내의라는 점에서 효량공파 출신들의 내의원 내위상이 더 높아졌다. 다섯째, 의학 관료는 19세기 전반 이후 의과 중심으로 배출되었다. 가계 내 양의사 입사자는 순조 때를 기점으로 하여 혜민서에서 전의감 중심으로 변화된다. 또한 내의는 의과 출신자여야 했으므로 전의감 중심으로의 관력자 변화와 내의중심으로의 내의원 입속과는 연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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