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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동민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백제학회 백제학보 백제학보 제38호
발행연도
2021.11
수록면
5 - 35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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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만은 남북방향 연안항로의 경유지, 동서방향 횡단항로의 기항지, 한강 수계의 인후부로서 교통망의‘결절점’이라는 지정학적 이점을 가진 동시에, 많은 연안항해 위험요소를 지닌 곳이다. 이에 따라 고대 경기만의 역사는 황해 항로와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황해 항로에 관한 기존 연구에서는 특정 사료를 통해 특정 항로의 개척시점 문제에 천착하였지만, 항로 활용의 주체와 목적에 따른 구분을 고려하면, 경기만과 긴밀히 연결된 황해중부횡단항로의 개척시점과 활용 양상에 대해 보완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황해 항로 활용의 주체는 국가와 민간 영역으로 나뉘며, 활용의 목적은 정치·군사·외교적 측면의 교섭과경제·문화·사상적 측면의 교류로 크게 구분된다. ‘교섭 항로’는 정치, 군사, 외교적 ‘교섭’을 위해 활용하는 항로를 의미하는데, ‘교류 항로’보다 공적인 성격을 지니며, 더욱 높은 안전성을 요구한다. ‘교류 항로’는 경제, 문화, 사상적 ‘교류’를 위해 활용하는 항로로서, ‘교섭 항로’보다 상대국과의 적대관계, 기항지 연안의 정세변화에 구애받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교섭 항로’는 ‘교류 항로’의 경험, 기술, 정보가 축적되어 안정성이 담보된 항로를 의미한다. ‘교섭 항로’, ‘교류 항로’는 당시 공간적으로 실재하는 항로라기보다, 연안항로, 횡단항로 등 다양한 항로를 활용했던 역사적 사실을 목적에 따라 구분한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 구분을 통해 황해중부횡단항로의 개척 시점을 살펴보면, 4세기 이전 경기만, 낙랑지역 관련문헌자료, 고고자료에서 이미 횡단항로가 교류 및 교섭 항로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확인된다. 그리고 4세기후반 백제는 앞선 시기의 횡단항로 경험을 흡수하여, 장거리 연안항로 대신에 횡단항로를 교섭 항로로 활용하여 동진과 교섭하였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기반으로 하면, 고대 경기만의 해양사적 전개과정은 4시기로 구분된다. 1기(~4세기 초반) 연안항로 중심 시대의 경기만은 연안항로 경유지로서, 신분고국과 ‘마한주’(백제왕)가 성장한 지역이었다. 횡단항로 중심 시대는 세 시기로 세분되는데, 2기(~5세기 초반)는 백제가 횡단항로를 활용한 시기로서, 경기만은 남북방향 연안항로, 동서방향 횡단항로, 내륙의 한강수계를 잇는 ‘결절점’ 역할을 하였다. 3기(~6세기 중반)에 경기만 ‘결절점’의 범위는 동아시아 각국으로 확대되어, 왜와 가라국도 경기만의 백제를 거쳐 중국과 교섭하였다. 하지만 백제 입장에서는 고구려의 남하로 인하여 교섭항로의 안정성이 떨어졌고, 왜나 가라국의 중국 교섭을 지켜보아야 하는 한계에 직면하였다. 4기(6세기 후반~)에 신라는 경기만을 차지하면서, 고구려의위협 속에서도 기존에 축적된 지정학적 이점과 해양학적 특성을 흡수하여 횡단항로를 통해 당과 동맹을 맺어삼국통일로 나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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