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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차장섭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강원사학회 江原史學 江原史學 제37호
발행연도
2021.11
수록면
79 - 112 (34page)
DOI
http://dx.doi.org/10.31097/KHR.2020.3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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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風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가문의 고유한 생활양식을 말한다. 조선시대 가문은 가풍의 확고히 정립을 통해서 세대가 교체되어도 그들만의 고유한 생활양식을유지 발전시켰다. 특히 家風은 家學을 통해 전승되었다. 家學은 학문의 전수를중심으로 하는 것이지만 가풍은 학문전수와 함께 취미와 경세론, 행동거지 등 생활양식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구별된다. 경주 양동마을 경주손씨는 淸德과 忠節을 가풍으로 계승 발전시켜왔다. 淸德은德으로 淸白을 실천하는 것이다. 양동마을 경주손씨 가문의 德에 바탕을 둔 淸白의가풍은 손사성에 의해 시작되었다. 여러 淸要職을 역임하면서 청백을 몸소 실천하여관료사회의 모범이 되었다. 그의 맑고 덕스러운 삶의 자세는 ‘淸名’으로서 당대의호평을 받았으며, 가풍으로서 확립되어 후손들에게 계승되었다. 淸德의 家風은 아들 손소가 지방관으로 재직하면서 가문의 전통인 청덕을 계승하여 실천하였다. 손중돈은 지방관으로 근무하면서 청렴한 자세로 참된 牧民의 道를실천하였다. 특히 상주목사에 임명되었을 때는 상주 고을의 백성들은 선정비를 건립하고, 丹密縣에 生祠堂을 건립하였으며, 마침내 청백리의 명부에 등재되었다. 그리고 손덕승이 지방관으로 녹봉과 창고의 곡식을 풀어 빈민을 구휼하고 민생의 고통을덜어주니 백성들이 그의 공덕을 찬양하여 송덕비를 세워 주었다. 忠節은 나라에 충성하고 국왕에게 절개를 지키는 것이다. 충절이 양동마을 경주손씨의 家風이 된 것은 孫昭가 공신으로 책봉되면서부터이다. 손소의 공신책봉으로양동마을의 이름이 楊左洞에서 良佐洞으로 바뀌면서 손소 이후 국가에 대한 忠節은양동마을 경주손씨의 家風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양동마을 경주손씨의 忠節 家風은 국가의 위기에 발휘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경주손씨 가문은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임진왜란에는 손소의玄孫인 孫曄, 孫時, 孫魯, 孫宗賀, 孫魯香 등이 떨쳐 일어나 대대적인 의병활동에나섰다. 그리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손중돈의 현손 孫宗老가 의병으로 참여하여전쟁터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양동마을에는 그의 충절을 기리는 旌忠閣이건립되어 있다.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이 흔들리게 되자 양동마을 경주손씨의 가풍은 독립운동으로 승화하였다. 성리학적인 학문을 계승하면서 국가가 일제에 의해 위기에 봉착하자국난극복을 위해 孫晉衡, 孫厚翼 등은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忠節의 家風 을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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