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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문기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동방한문학 제63호
발행연도
2015.6
수록면
149 - 18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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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崔致遠이 908년(효공왕 12)에 찬술한 「新羅 壽昌郡護國城 八角燈樓記」의 분석을 통하여 대구 호족 이재의 실체를 해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등루기」는 내용의 흐름상 9단락으로 나누어지며 글의 주된 목적이 새로 건립된 팔각등루의 건립 배경을 소개하고 건립자 이재를 찬양하는데 있었지만 간접적 내지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서 대구 호족 護國義營都將 重阿? 異才에 관한 정보를 전해주고 있다. 둘째, 대학자 최치원이 일개 지방 세력가에 지나지 않는 대구 호족 이재를 위하여 「등루기」를 찬술하게 된 배경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양자가 모두 차상급 귀족인 육두품 출신으로서 신분적인 한계와 그로부터 기인된 불만을 공유한 존재였고, 모두 지방관인 군태수를 역임한 경력을 지니고 있어 평소 지면이 있거나 교유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최치원과 이재는 모두 신라가 당면한 현실을 극히 비관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신라에 대한 애정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은 강한 유대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등루기」 찬술의 주된 배경이 되었다. 셋째, 원래 王京人으로서 六頭品 출신인 異才는 중앙관료로서 활동하다가 重阿?의 관등으로 外職인 수창군 태수로 부임하면서 수창군과 인연을 맺었다. 전국 군현에서 호족들이 ?起하고 있었고, 견훤과 궁예가 이들의 支持 속에서 왕위에 올라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등의 신라 정세의 급변을 틈타, 異才도 898년(효공왕 5)경에 護國城을 새로 쌓고 護國義營都將을 자칭하면서 수창군 일원을 지배권역으로 하는 호족으로 자립하였다. 넷째, 그가 居城이자 핵심적 근거지로 삼기 위해 축조한 護國城은 「등루기」의 서술과 대구지역의 성곽유적을 고려할 때, 조선 후기에 축조된 大丘邑城址로 비정되며 八角燈樓가 세워진 南嶺은 連龜山으로 보아야 가장 합리적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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