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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李文基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50호
발행연도
2020.12
수록면
287 - 312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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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908년 11월 이후 해인사에 은거해 있던 신라 최고의 학자이자 문인이었던 최치원이 대구지역의 호족인 異才라는 인물이 수창군(대구)에 八角 燈樓를 건립하고 記文을 청하자, 이에 응하여 「등루기」를 撰述하게 된 배경을 밝혀보려는 목적에서 작성된 것이다.
9세기 말 이후 신라의 현실에 대한 최치원의 인식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부정적・비관적으로 인식하면서도 그 밑바닥에는 신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한 그에게 대구의 호족인 護國義營都將 異才가 ‘나라의 경사를 빌고 전쟁의 화를 물리치기 위한’ 목적으로 수창군 남령에 팔각등루를 건립하고 기문을 요청하였다. 이재는 최치원과 출신 신분이 6두품으로 같았고, 중앙의 관직을 거쳐 지방의 군태수가 된 정치적 경력이 비슷하였다. 게다가 당시 신라의 현실을 비관적으로 파악하면서도 불교에 기대어 혼란에 빠진 신라를 지켜야 한다는 호국이념도 일치하였다. 그래서 최치원은 이재에 대해 깊은 同類意識 내지 同志意識을 느껴 이재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여 「등루기」를 찬술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9세기 말 이후 신라 현실에 대한 최치원의 양면적 인식
Ⅲ. 최치원의 「등루기」 찬술 배경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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