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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연성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인문과학연구 제77집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33 - 54 (22page)
DOI
10.33252/sih.2023.6.7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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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일본군은 조선의 8도 중 7도를 장악하였다. 남은 전라도를 점령하기 위해 일본군이 충청도와 경상도를 통해 남하하였다. 일본군은 전라도를 침략하기 위해 먼저 무주와 금산을 점령하고, 용담, 장수, 진안을 통해 전주의 경계에 이르게 되었다. 조선군은 관찰사 이광(李洸)의 방어 계획에 따라 주요 지점에 배치되어 일본군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일본군이 진안에서 전주의 경계에 있는 웅치(熊峙)로 향하게 되었고, 조선군도 이곳에서 방어진을 구성하였다.
일본군은 웅치에서 방어하던 조선군의 저항을 돌파하고 전주로 향했다. 웅치에서 김제군수 정담(鄭湛)은 조선군의 퇴각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다 전사하였다. 정담의 활약으로 조선군은 병력을 보존한 채 전주 동쪽 부근 10리에 위치한 안덕원(安德院)에서 재차 일본군에 대한 방어에 임하게 되었다. 안덕원에서 전투는 1592년 7월 9일에서 10일 사이에 발생하였고, 일본군의 침입에 따라 병력을 이동한 황진(黃進)이 가세하여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일본군은 전주의 방비가 삼엄한 것을 보고 퇴각하게 되었다.
안덕원전투는 전주 방어전으로서 웅치전투의 연속선상에서 발생한 싸움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안덕원전투는 웅치전투와는 다른 개별전투라고 봐야할 것이다. 안덕원전투에서 조선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에는 웅치전투에서의 병력 보존과 적극적인 방어로 전주성 외곽에서 재차 전투를 수행한 현장 지휘관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었다는 점에 있다. 전투 과정에서 관찰사 이광의 방어전술과 용병술, 조선군의 첩보 수집 능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승리할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일본군의 전라도 침입과 전주 방어전
3. 전주 안덕원전투의 전개와 의의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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