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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병준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43호
발행연도
2023.4
수록면
59 - 9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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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博節度使 田弘正은 절도사에 오르자(되자) 바로 朝廷에 귀순하였는데, 거기에는 대략 세 가지 원인이 있었다. 즉 첫째는 어려서부터 유학을 좋아한 부친으로부터 이어받은 개인적 성향이고, 둘째는 시대 추세를 보고 내린 결단이고, 셋째는 藩鎭 내부의 모순상황에 따른 것을 들 수 있다. 전홍정은 조정에 귀순한 후 위박을 대대적으로 개혁하였다. 즉 “魏州自承嗣已來, 館宇ㆍ服玩有踰常制者, 悉命徹毀之, 以正廳大侈不居, 乃視事于採訪使廳. 賓僚參佐, 請之於朝”. 이는 諸侯的 地位에 맞게 행동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헌종이 成德을 토벌하고 淮西를 토평할 때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으며, 특히 平盧를 토벌할 때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평로의 토벌로 헌종의 번진개혁은 일단 완성되었다. 穆宗 시기에 河北三鎭은 다시 割據藩鎭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조정의 위협이 되지 못하였고 이후 번진체제는 한동안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 점에서 헌종의 번진개혁은 큰 의미를 지녔는데, 그 과정에 전홍정의 귀순이 상당한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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