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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현수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동양철학연구회 동양철학연구 동양철학연구 제113호
발행연도
2023.2
수록면
7 - 40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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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유교를 이념으로 한 국가로, 공자를 위시한 유교 성현을 제사지내는 문묘석전은 조선 개국 초부터 중요한 의례로 인식되어 활발하게 시행되었다. 그리고 점차 중국과 다른 특징을 지니면서 전개되는 양상을 보였다. 본고에서는 조선시대 문묘석전의 특징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첫째, 공자의 시호가 중국과 다르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명 세종 가정 9년(1530)에 공자를 왕으로 호칭하는 것을 폐기하고, ‘지성선사(至聖先師)’로 개칭하였다. 이에 비해 조선에서는 공자 시호에 대한 논쟁이 있었으나,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의 시호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둘째, 고려시대에 설총(薛聰), 최치원(崔致遠), 안향(安珦)을 문묘종사한 것에 이어서 조선시대에 정몽주(鄭夢周),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김인후(金麟厚), 이이(李珥), 성혼(成渾), 조헌(趙憲), 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박세채(朴世采)를 문묘종사하였다. 이들은 모두 성리학자에 해당되는데, 이는 조선시대 유학이 성리학 중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셋째, 조선시대 문묘에 종사된 중국 선현들도 중국 성리학자 중심으로 배향되었다. 이에 비해 중국은 명대 양명학자 및 청대 학자들을 많이 종사하였다. 더불어 조선은 주자를 위시한 송조 6현을 동서무(東西廡)에서 대성전(大成殿)으로 승배(陞配)시켰다. 이는 송대 성리학이 바로 공자와 맹자의 도통(道統)을 잇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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