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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영주 (선문대학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90호
발행연도
2023.5
수록면
5 - 46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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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후백제 견훤 도읍기의 무진주(광주·전남)의 모습을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살펴보았다. 후백제의 고고학적 자료는 ‘官’자 명문기와, 통일신라 말~후백제 관련 기와류, 통일신라 말 토기류, 중국제 자기류 등이 해당한다. 후백제시기 무진주(광주) 치소의 모습은 통일신라시기의 것과 유사하다. 9세기 말엽의 무진고성 수축과 개선사지 석등기를 통한 시대적인 상황과 토착 세력의 선택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광주의 인접 지역은 치소를 받쳐주기 위한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었다. 전남 서부지역 중 영산강 상류의 산성과 생활유적은 광주를 방어하는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면서 배후지에 해당하며, 서남해안지역의 산성은 해상활동의 요충지로서 중요하였다. 영산강 중류의 회진토성은 나주지역의 치소이며, 잠애산성은 배후산성으로 왕건 세력과 견훤 세력이 충돌한 곳이다. 한편 기와의 생산과 보급은 대체로 지역단위로 생산-유통체계가 마련되어 있었다. 전남 동부지역 중 섬진강 상류의 산성은 전략적 요충지이며, 인근의 사찰과 함께 지역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광양만 일대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해상교역의 무대를 바탕으로 순천의 박영규, 여수의 김총과 같은 호족 세력이 등장하였고, 후대에 견훤의 핵심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또한 광양만 일대는 해상교역과 교섭의 중요한 항만으로 중국제 자기류의 수입과 대당 유학 스님들의 귀국지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이후 선종 사찰의 중심지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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