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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수홍 ((재)울산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부산고고학연구회 고고광장 고고광장 제32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1 - 27 (27page)
DOI
https://doi.org/10.47735/odia.202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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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역의 묘역식지석묘를 검토하고, 구산동지석묘의 특징과 성격에 대해 살펴보았다. 영남지역에는 현재까지 56곳의 유적에서 340여기의 묘역식지석묘가 조사되었다. 묘역식지석묘는 영남 각지에 분포한다. 청동기시대 전기의 늦은 시기에 출현하여 초기철기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축조되었다. 청동기시대 후기에는 거대한 묘역식지석묘가 군집을 이루어 축조된다. 이 시기는 거대한 묘역식지석묘가 계층화의 과정을 보여주지만, 아직 완전한 불평등사회로 진입한 것은 아니다. 초기철기시대가 되면 불평등사회로 진입하면서, 공동체를 위한 것이 아닌 1인을 위한 무덤이 축조되는데 무덤군에서 거대한 묘역식지석묘는 단 1기만 축조된다. 구산동지석묘는 그 규모에서 압도적인 거대함, 무덤군에서 1기만 촌재하는 묘역식 무덤, 상석이 묘역에 직교하고, 매장주체부가 목관(木棺)이며, 출토유물이 기존의 지석묘 출토유물과는 이질적인 옹(甕)과 두형토기(豆形土器)라는 특징이 있다. 초기철기시대에 축조된 것이 확실하며 무덤으로 축조되었다. 김해지역에 새로운 이주민의 정착이 늦어진 것은 구산동지석묘를 축조할 만큼 강력한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산동지석묘는 초기철기시대 재지민이 축조한 최후의 군장묘이다. 청동기시대가 끝나는 전환기에 변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후 청동기시대는 종언하고 새로운 시대가 개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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