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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미선 (명지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불교사연구소 한국불교사연구 한국불교사연구 제23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179 - 218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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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삼국유사 전수조사의 일환으로, 삼국유사 속불탑과 장례에 관한 기사들을 선별하여 신라의 불탑 및 장례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불탑은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는 부처의 무덤으로, 석가모니의 다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불탑은 불교식 장례와도 밀접히 연관될 수 있다. 이에 불탑과 장례를 키워드로 삼았던것이다. 불탑 관련 삼국유사 기록을 조사해 본 결과, 그 수가 많지 않았다. 사리 봉안이라는 본연의 역할과 사찰의 구성 요소로 신앙과 예배의 대상이 된 불탑의 모습도 전하고 있었으나, 불탑 건립과 관련된 연기설화를 중심으로, ‘영험’과 ‘신이’를 보여준 불탑을 중심으로수록하고 있었다. 더욱이 신라 하대에는 무구정경 의 유입에 따라극락왕생을 염원하며 탑을 조성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이들 불탑에 대한 기사는 삼국유사 에서 찾을 수 없었다. 무구정경 과 조탑의 관련성은 탑 속의 사리함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연은볼 수 없었던 것이다. 삼국유사 속 불탑 기록은 국가나 왕실과관련된 것으로, 그 불탑의 영험이 명확한 것을 강조하였다면, 신라하대 무구정경 에 근거한 조탑은 철저히 개인이나 자기 가족의 극락왕생만을 추구하는 성격이 강했다. 이는 불교가 정치사회사상으로서만이 아니라 사후세계관으로 신라인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불교적 사후세계관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 장례법으로, ‘화장’을 꼽을 수 있다. 이에 ‘장례’와 관련된 삼국유사 기록을 조사해 본 결과, 왕력과 기이편에 왕의 장례와 능의 위치에 관한 기록이주로 담겨 있고, 「의해」 이하 편에서는 승려과 수행자들의 장례에관한 기록을 단편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사후 화장한 왕은 문무왕을 포함하여 8명밖에 되지 않는다. 삼국유사 에서는 왕력편에서만 왕의 화장을 전하고 있다. 이들 왕들은유언에 따라 화장을 한 것으로 보아 장례방식으로 화장을 선택하는것은 왕의 결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록상 신라 승려로서 최초로 화장한 이는 자장이었다. 그러나 승려들도 화장보다 전통적인매장으로 장례가 치러지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그렇지만 고고학 성과를 보면, 8~9세기에 화장묘가 유행하였다. 물론 이때 화장묘는 화장한 후 매장한 경우로,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을 뿐이지 화장 후 뿌리는 경우가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화장(묘)의 유행을 볼 때 화장하는 승려나 귀족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처럼 삼국유사 속 불탑과 장례, 특히 화장에 관한 기록은 예상보다 적지만, 불교 수용 후 불교식 장례와 불교적 사후세계관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았음을 확인시켜준다. 무엇보다 금석문이나 고고학 성과들을 적극 활용할 때 삼국유사 속 기록들을 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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