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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진현 (호림박물관)
저널정보
한국중세고고학회 한국중세고고학 한국중세고고학 제14호
발행연도
2023.12
수록면
117 - 143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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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산이면 진산리 일대는 고려 중기에 청자 · 흑유도기 · 도기 등 다양한 종류의 도자기를 생산한 대규모 요장이 위치한 곳이다. 이 지역이 고려도자의 주요 생산지로 주목받은 시기는 1980년대 초반으로 강진과 부안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 비해서 뒤늦었다. 이후 진산리는 완도 약산면 어두리 해저에서 대량의 조질청자를 선적하여 운반하다가 침몰한 고려시대 선박이 인양되면서 진산리가 조질청자의 생산지로 주목받았다.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가마터가 발굴된 사례는 1991년에 이루어진 진산리 17호이다. 발굴조사결과 주로 점토를 사용하여 축조한 중형의 가마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조질청자였으며 이외에도 도기와 요도구(窯道具)가 확인되었다. 청자 중에는 철화(鐵畵)와 철채(鐵彩) 기법으로 장식된 예가 확인되어 철화청자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산이면 일대에서 대규모의 청자요장이 운영된 사실에 비하면 최근까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사례는 매우 부족하다. 2018년과 2021년 민족문화유산연구원에서 실시한 진산리 74호 20호 요장에 대한 발굴조사는 이 지역에서 생산한 청자에 대한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두 요장에 대한 발굴조사결과 이 지역에서 운영된 청자 가마는 시기에 따라 가마의 규모와 구조, 요도구의 사용에서 차이를 보였다. 즉, 진산리에서는 고려 초기에는 10m 길이 내외의 소형 가마를 활용하다가 중기에는 20m 길이 이상의 중형 가마를 활용하여 청자를 생산하였다. 청자의 품질도 앞선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질이 양호한 청자를 생산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질이 떨어지는 청자를 대량으로 생산하였다.
고려 중기 진산리에서 생산된 청자는 다른 지역의 조질청자에 비해서 조질화가 심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 이유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재료의 선택과 사용에서 조잡한 흙과 유약을 사용하였다. 둘째는 성형이 거칠고 끝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초벌 없이 번조하였다. 셋째는 번조 시 갑발을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도침(陶枕, 도지미)을 사용하여 포개어 구웠다.
한편, 현재까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진산리 청자 가마에서는 연소실과 번조실 사이에 불턱 구조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불턱은 고려 중기에 운용된 청자 가마에서 보편적으로 확인되는 구조로, 연소실에서 발생한 열이 그릇에 직접 닿지 않도록 하고, 가마 안의 온도를 고르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진산리 청자 요장에서는 불턱이 없는 가마를 운용하여 가마안의 온도를 빠르게 올려 짧은 시간에 청자를 생산한 것으로 보인다. 즉, 진산리 청자 요장은 생산 공정과 과정을 단순화한 제작 방식으로 청자를 생산함으로써 고려 중기 이후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조질청자의 수요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중요 생산지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해남 진산리 요장의 현황과 가마 구조
Ⅲ. 진산리 요장 출토 유물의 종류와 특징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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