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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동순
저널정보
인문사회예술융합학회 문화와융합 문화와 융합 제42권 제7호
발행연도
2020.7
수록면
633 - 650 (1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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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투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사에 빠져있었던 최원순의 독립운동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썼다. 연구방법으로는 역사전기적인 방법으로 실증적인 자료를 토대로 삼았으며 최원순의 독립운동을 밝히기 위하여 생애를 중심으로 연대기적인 순서에 따랐다. 석아(石啞) 최원순(崔元淳)은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와세다대학 정경과 재학 중 ‘조선청년독립단’의 결성을 주도하였고,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등사한 장본인이었으며 조선유학생 학우회와 함께 1919년 2·8독립선언의 막전막후에서 암약하였다. 일경에 검속되었고 감시대상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유학생학우회 순회 강연단으로 3년간 활동하였다. 특히 「이춘원에게 문하노라」로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비판하여 주목을 받았고 비평가로 입지를 세웠다. 일제의 감시자 대상자가 되어 일본과 조선에서 독립을 위해 헌신한 그는 신간회 창립회원이자 임원으로, 전조선기자대회 제안자로서 전조선기자대회를 이끌었고 동아일보 기자로 조선총독부를 비판한 죄로 투옥되었지만 일제의 식민통치를 끝까지 비판하였다. 옥고를 치른 과정에서 발병한 폐병으로 낙향하여 요양하면서도 지역사회의 변혁과 궁민들을 구제하는 데 앞장서다가 이른 나이에 요절하였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서 최원순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예리한 비평가이자 정론직필의 언론인으로서 올곧은 길을 걸었던 독립운동가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목차

1. 서 론 2. ‘2·8독립선언’과 ‘신간회’ 3. ‘전조선기자대회’와 필화사건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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