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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성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저널정보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인문과학연구 제38호
발행연도
2024.2
수록면
167 - 19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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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4~15세기에 걸친 원명元明의 교체기를 단절적이기보다는 연속적으로 이해하기를 제안하고 있다. 필자는 이 두 시대의 연속성이 정치, 외교, 사회, 경제는 물론 종교, 미술, 공예를광범하게 포괄하는 문화 전반에서도 확인됨을 주목하였다. 이를 통해 몽골제국이 마련한 세계 질서와 문화 전통이 명에 의해 일정 부분 계승 발전되어 중국 문화 전통의 일부가 되었음을 밝히고자하였다. 필자는 먼저 정치적 수사修辭에서 두 시대의 연속성을 고찰하였다. 대원大元과 대명大明이라는두 국호의 명명 방식이 그렇고, 최고 통수권자가 天命을 허락받음을 묘사하는 방식이 유사했다. 몽골을 극복하겠다는 정치적 구호에도 불구하고 주원장은 앞선 몽골제국의 전통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필자가 두 번째로 지적한 점은 15세기 초 국제정세 속에서 명은 몽골의 계승국가로서 자신을자리매김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명의 의지라기보다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 상황이 작용한 탓이라고 보아야 한다. 중앙아시아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던 티무르는 대몽골 울루스의 회복을 목표로 동진을 단행했다. 비록 동진 중 티무르가 사망하면서 명에 대한 티무르의 대공세가 실현되지는못했지만, 그 후로도 몽골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은 끊이지 않았고 명은 그때마다 새로운 몽골의 집권자와 대결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주의해 본 점은 티베트 불교계와 몽골 정권 사이의 관계가 명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는 명을 거쳐 청淸으로도 이어져 동부 유라시아의 광범한 지역에서티베트 불교의 위상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13세기 후반 사캬 교단과 쿠빌라이의 관계는 大都 곳곳에 종교적 기념물을 남겼으며 황실의 불사를 담당한 승려들은 인도, 티베트, 중앙아시아, 중원과 몽골 초원을 누비며 종교인이며 지식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문화의 향유자이며 후원자로서 몽골 집권자들에 대한 존경과 기대는 몽골이 세계의 중심이 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했고 명에 의해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이 또한 명이 동부 유라시아에서 몽골의 후예들과 치뤘던체제 경쟁의 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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