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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강원묵 (명지대학교 사학과 조교수)
저널정보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인문사회과학연구 인문사회과학연구 제25권 제1호
발행연도
2024.2
수록면
43 - 73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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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705년에 예수회가 체결한 북경 내성(內城) 가옥 계약과 이듬해 이 계약을 둘러싸고 발생한 예수회 측과 교황 특사 샤를 토마 마이야르 드 투르농(Charles-Thomas Maillard de Tournon, 多羅, 鐸羅, 1668-1710) 측 간의 논쟁을 고찰한다. 가옥의 ‘매도자’는 양광총독(兩廣總督)의 아들로 북경 내성 남서쪽에 거주하고 있던 양홍기(鑲紅旗) 기인(旗人)이고 ‘매수자’는 북경에서 강희제(康熙帝)를 위해 복무하며 전교(傳敎) 사업에 힘쓰던 남당(南堂) 예수회 선교사들이었다. 당시 의례(儀禮) 논쟁 재조사를 위해 북경에 거류하고 있던 교황 특사 투르농은 이 계약을 두고 매매를 가장한 채무 계약이라고 비난했고 예수회 측은 투르농의 그 같은 이해가 전(典)이라는 중국 사회 관행에 대한 무지의 소치라며 응수했다. 그러나 예수회 측이 ‘중국 사회에서는 너무나 분명하게 매매 거래로 간주’된다고 그토록 강조한 전(典) 관행에는 사실 채무 거래와 쉽게 구분할 수 없는 모호성이 존재했다. 당시 로마에 만연했던 매매 계약을 가장한 다양한 채무 계약과 그것들을 막기 위한 비오 5세의 칙서(bull)는 북경 예수회에게도 그리 생소한 정보가 아니었을 것이다. 예수회가 ‘중국 특유의’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외형상 로마의 부도덕한 관행과 너무나도 유사한 북경 예수회 측 계약 건들에 대해 투르농이 우려를 표하고 조사에 착수한 것을 단순히 상대 문화에 대한 무지의 소산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예수회 측이 ‘반대자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끝내 건네주지 않은 계약서들로 인해 우리는 당시 예수회 측 계약의 구체적 실상을 현재로서는 더 밝혀내기 어렵다. 하지만 북경기사 가 묘사하는 투르농 상(像) 즉 ‘중국 문화에 대한 무지한 독불장군 이방인’ 이미지는 재고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종종 너무 쉽게 상정해버리는 예수회의 ‘중국 문화 존중’, 투르농, 더 나아가 ‘반(反) 예수회’ 측의 ‘유럽 중심적 사고’라는 이분법적 이해방식 사이에는 좀 더 세밀히 따져봐야 할 지점들이 있다. 중국 문화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예수회의 논리 한 꺼풀 뒤에 ‘동양’과 ‘서양’을 넘어선 보편성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좀 더 엄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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