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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스토야킨 막심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80輯
발행연도
2024.11
수록면
99 - 132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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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요녕성 동부에 위치한 오녀산성의 성격과 보고서에서 제기한 편년에 대해 재검토한 것이다. 그간 한국학계는 주로 고구려시기에 집중하여 연구하였으나 본 글에서는 금대(제5기)에도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였다. 오녀산성은 지형조건, 여러 시기 문화층의 심각한 교란 및 조사 방법적 특징 등으로 인하여 일부 유물과 유구에 대한 편년에 있어 문제가 간취되었다.
오녀산성은 산 위에 위치한 유적으로 연구자 대다수가 문헌 속 고구려 초기 도성인 졸본으로 비정하였다. 하지만 이 산성은 행정보다 방어와 상징적 기능이 더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또 고구려 전기에 해당되는 제3기에서 크로우놉카문화 요소(토기, 부뚜막 시설)가 확인되어 앞으로 고구려와 옥저의 관계를 고고학적으로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 제4기는 방어용 기능을 중시하여 가장 활발하게 운영한 점유단계였다. 한국학계에서는 이 시기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연대는 중국 측 주장과 달리 5-6세기로 비정하는 것이 타당해 보이지만, 일부 유물, 즉 철촉, 찰갑, 마구 등의 편년에 대한 문제가 있기에 이 글에서는 이를 재검토하였다.
또, 중국학계에서 주장하는 발해시기 유물에 대해 재검토하였다. 이 과정에서 목단강 중류에 위치한 진흥 유적의 최말기 역시 발해가 아닌 여진 시기에 활용되었음을 추정하였다.
한편, 이 글에서는 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오녀산성 제5기의 현황을 소개하였고, 금대의 중요성을 조명하였으며, 제4기와 마찬가지로 일부 유물에 대한 편년을 재검토하였다. 또한 건축단계를 살펴보고 유적의 운영시기를 추정하였다. “도통소인” 인장을 통해 이 산성은 행정적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론해 보았다. 직접적인 연대가 확실하게 제시된 자료가 없어 연대를 추정하기에 현실적인 문제가 있지만, 간접적으로 제5기는 금대 최말기에 운영되었음을 추정하였다. 오녀산성 5기는 금대에 해당되지만 일부 요소(산성, 축성재료, 유물성격과 형식)를 기초로 금대 말기에 존재한 동하국과 깊은 관련성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전략적인 위치, 문헌 기록을 볼 때, 오녀산성은 금대 이후 고려말기-조선중기까지도 여진족이 사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오녀산성 제3기 문화층 검토
Ⅲ. 오녀산성 제4기 문화층 검토
Ⅳ. 오녀산성 발해시기 유물에 대한 재검토
Ⅴ. 오녀산성 제5기 문화층 현황, 성격, 유물 재검토
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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