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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항녕 (전주대학교)
저널정보
전북사학회 전북사학 전북사학 제71호
발행연도
2024.7
수록면
69 - 10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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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재(默齋) 이귀(李貴 1557~1633)의 생애는 임진왜란, 광해군의 혼정(昏政), 인조반정(仁祖反正), 그리고 이 시대를 관통하는 기축옥사라는 사건들과 맞물려 있다. 그런 점에서 개인사가 시대상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귀는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제자였고, 시사(時事)에 대한 직언(直言)으로 유명하였다. 본고에서는 첫째, 이귀의 경험을 통해 좌천, 귀양, 반정이라는 정치 운영의 일단을 밝혀보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둘째, 연구 시기는 이귀가 관직 생활을 하는 선조 후반~광해군~인조 초반의 시기로 제한하였다. 그는 늦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외직을 전전하거나 좌천의 시기를 보냈다. 선조 시대 영남의 사림 정인홍, 영의정 유영경을 비판한 결과였다. 광해군 때도 다르지 않았다. 광해군 즉위 초 인사의 난맥상을 비판했던 이귀는 숙천 부사 등을 전전하였고, 계축옥사 이후 이귀는 최기(崔沂)의 옥사에 연루되어 강원도 이천(伊川)으로 귀양을 갔다. 이귀는 이곳 적소(謫所)에서 광해군의 혼정(昏政)을 바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반정은 민생과 사회가 유지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본 것이다. 이귀는 아들 이시백과 함께 반정에 참여하여 1등 공신에 책록되었다. 또한 이귀의 활동 시기는 조선 중기 주요 사건인 기축옥사의 결말과 궤를 같이 하고 있었다. 기축옥사는 이귀의 좌천, 귀양, 반정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 시대 사람들의 숙제이기도 했다. 인조반정이 일어난 이듬해 조정에서는 정철의 관작을 추복(追復)하였고, 한 달 뒤 기축옥사 때 희생된 이길(李洁)·이발(李潑)·정개청(鄭介淸)·유몽정(柳夢井)·조대중(曺大中) 등의 복관시켰다. 이렇게 반정은 이귀의 일생과 맞물린 광해군 혼정의 결말일 뿐 아니라, 30여 년 지난 기축옥사의 정리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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