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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영문 (숭실대학교)
저널정보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동방학 제51호
발행연도
2024.8
수록면
91 - 116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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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에 외교의 중요한 수단은 사행이었다.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재편되던 명ㆍ청 교체기에도 사행은 이루어졌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기록된 사행록 중에 최현의 조천일록 이 있다. 본 연구는 최현의 조천일록 에 기록된 자료를 중심으로, 17세기 명ㆍ청 교체기의 의례 양상과 그 의미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최현은 1608년 8월 3일부터 1609년 3월 22일까지 북경을 사행하였다. 이 여정에서의 견문과 감상을 기록한 사행록에는 요동 지역의 이질적인 의례와 문화가 잘 나타나 있다. 성리학을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은 조선에서는 상ㆍ장례(喪葬禮)가 엄숙한 유교 의례로 행해졌지만, 요동 지역에서는 이질적인 의례가 발견된다. 이를 바탕으로 17세기 초 요동 지역의 의례와 문화에 대한 사정(事情)과 죽음을 대하는 조선 사대부와 요동 지역민들의 인식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사행이 평양과 영평부에 도착하면, 사신들은 ‘기자묘’와 ‘이제묘’를 방문하였다. 이들 지역은 조선의 사신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는데, 이제묘는 ‘순례의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사신들은 이 장소에서 한시를 창작하고 참배하였다. 반면에 해로 사행에서 찾은 창락현의 이제묘는 ‘순례의 공간’으로 정립되지 못했다. 사행에서 흔히 발견되는 의례는 ‘정치 의례’이다. 이는 사행의 목적이 정치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해안 지역에서는 민간 신앙을 기반으로 형성된 의례가 성행하였다. 이것은 인간과 자연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문화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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