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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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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주형 (고려대학교) 박규진 (고려대학교) 최종택 (고려대학교) 이현경 정현운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81輯
발행연도
2025.3
수록면
33 - 67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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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신빈 영릉남성지의 유구와 출토 유물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기존 연구에서 제시된 문화층의 시기 구분과 고구려의 점유 시기를 재검토하였다. 유구 및 문화층 시기 분석을 진행하여 일부 문화층에서 유물의 혼재 및 교란 양상이 확인한 결과, 특히 제4기 후기 문화층과 제5기 문화층에서 선행 시기의 유물이 공반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문화층의 편년을 정교하게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다음으로 4구획 연화문 와당의 출현 시기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제3기 문화층의 연대를 토기자료를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 동한 초-후기까지 넓은 시간 범위에 분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므로 4구획 연화문 와당의 출현 시점을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와당의 문양이 제3기 문화층(동한 시기)부터 출현한 것으로 보고되었지만 보다 후대에 제작 및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리고 고구려의 점유 시기는 영릉남성지 제4기 후기 문화층에서 출토된 고구려 토기자료와 고구려 고분 출토 토기를 상호비교하는 작업을 통해 고구려의 영릉남성지 점유 시기를 알아보았다. 고구려의 점유 시기는 4세기 중·후반에서 6세기 전반까지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보고서에서 제시된 4세기 중반의 폐기 연대보다 더 늦은 시기까지 고구려가 영릉남성지를 운용하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영릉남성지는 4세기대 북도의 주요 거점으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높다. 삼연계 유물과 고구려 유물이 동일 층위에서 공반 출토된 점을 감안한다면 고구려와 삼연 간의 군사적 대립과 충돌, 그리고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진 장소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유구와 문화층 분석
Ⅲ. 문화층의 시기 검토: 4구획 연화문 와당을 중심으로
Ⅳ. 고구려의 점유 시기 재검토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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