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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백지국 (嶺南大學校)
저널정보
동아인문학회 동아인문학 東亞人文學 第70輯
발행연도
2025.3
수록면
245 - 275 (31page)
DOI
10.52639/JEAH.2025.03.7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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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 시대 창원부 남면에서 시행된 계(契)를 통해 창원의 향촌사회 구조와 재지사족의 변화 양상을 규명한 것이다. 창원 남면은 교하노씨・단양우씨・순흥안씨 등 유력 가문이 세거지를 형성하며 향촌사회를 주도한 지역으로, 동계(洞契)는 이들의 사회적 통합과 지배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도구로 기능하였다.
남면동계는 17세기 단양우씨 외에도 다양한 가문이 참여하였으며,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운영되었다. 18세기에 교하노씨가 부상하면서 단양우씨・순흥안씨와 함께 동계의 중심 가문으로 자리 잡았다. 19세기에는 순흥안씨가 동계를 주도하며 지역 내 영향력을 공고히 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 후기 재지사족의 세력 변동과 지역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다.
또한 18세기 중반, 서파(庶派)가 남면동계의 상계원으로 편입되면서 향촌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좌목 작성 방식에서는 기존 사족층과 서파를 구분하여 서파의 성장을 제한하려는 모습이 드러난다. 이는 사족 중심 질서를 유지하려는 노력과 신향(新鄕)의 부상이 혼재된 사회적 긴장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창원의 사족은 동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초기 동계 운영은 간소한 규정과 상호부조적 성격을 기반으로 이루어졌으나, 점차 재정 관리, 의례 규정, 동원 통제 등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발전하였다. 이를 통해 동계는 단순한 상호부조 기구를 넘어 재지사족의 지배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하였다. 혼례와 장례 같은 의례를 관장하고, 부세 문제에 공동 대응하는 역할도 수행하였다. 창원의 사족은 19세기 말까지 동계 운영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향촌 사회 내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들어가는 말
Ⅱ. 창원부 남면의 지역적 특성과 계
Ⅲ. 남면동계를 통해 본 재지사족의 동향
Ⅳ. 서얼 층의 성장과 향촌 지배 구조의 변화
Ⅴ. 동계 운영과 향촌사회
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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