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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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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저자정보

김혜진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정병준
발행연도
2017
저작권
이화여자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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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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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48년 제헌헌법에 기초해 수립된 한국정부가 헌법前文에 명시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계승’을 어떻게 인식하였으며, 제1공화국시기 한국정부는 실제로 이 계승인식의 구현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였는지 구체적 실상을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정)는 독립운동사에 있어 대표성과 역사적 정통성을 갖고 있었으나 정부수립을 위한 1948년 5?10선거에 임정계열 인사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공화국은 헌법前文을 통해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라는 문구를 통해 ‘임정계승인식’을 바탕으로 정부를 구성했음을 밝히고 있었으며, 이 前文은 제1공화국 시기 이루어진 두 차례의 개헌에도 불구하고 수정되지 않았다. 이에 1948년에 수립된 한국정부는 왜 자신이 3?1운동으로 수립된 임정을 계승해 ‘재건’된 것이라고 인식했으며, 1948년의 제헌헌법 전문은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이라고 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선행연구들은 주로 제헌헌법과 임시헌장의 유사성을 분석하여 임정계승인식의 유무를 논의한 것에 그친 반면, 제1공화국에서 임정계승인식의 표방이 헌법제정과정 및 국가정책을 통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본 논문에서는 제헌헌법 제정과정에서 임정계승인식이 삽입된 경위와 의미를 파악하고, 임정계승인식이 법적?제도적 차원에서 어떻게 공식적 기념 및 상징으로 구현되었는지 확인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헌법제정회의록』과『국회속기록』,『대통령이승만담화집』과『국무회의록』을면밀히 검토하였다.
이상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1948년에 수립된 한국정부는 헌법 전문에 의거하여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재건”된 것이며 이에 따라 임정계승인식은 한국 정부수립의 중심축으로 작용하였다. 1948년의 제헌국회는 헌법을 통해 한국정부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1948년 분단의 상황에서 역사적 정통성과 정부수립의 정당성을 주장하고자 하였다. 이에 헌법전문 및 헌법의 체제와 각 조항에서 임시헌장과의 유사성을 통해 제헌헌법이 ‘임정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제1공화국은 국가의 법적근간인 헌법제정과정에서 이미 임정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정부수립과정에 임정요인들은 불참하였고, 냉전의 상황으로 인해 임정 계승인식이 변용되면서 그것을 정책적으로 구현함에 있어 한계가 표출되었다. 특히 1950년대에 들어와 전란을 겪으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국가기념일마저 반공의식을 강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변용되었다. 따라서 전쟁의례가 반복되었고, 임정 및 그 세력에 대한 기억은 배제되었다.
이와 같은 양상은 상징물 건립과 포상 정책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났다. 애국선열을 기념하는 상징물을 건립하는 대신 대통령 이승만을 기념하기 위한 상징물 건립이 우선시 되었으며, 독립유공자 포상과정에서도 국내 독립운동가 대신 미주지역에서 이승만과 친분을 교류한 인사들이 대거 선정되었다.
이상의 정책들을 살펴본 결과, 제1공화국은 헌법前文을 통해 밝힌 ‘임정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정책적으로 구현하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제1공화국에서의 임정계승정신은 헌법상에서 한국정부의 역사적 정통성을 상징하는 문구로서의 존재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태로 존재하게 되었다. 제1공화국 시기 헌법前文에 명문화된 ‘임정계승인식’은 정부수립의 정당성과 역사적 정통성을 상징하는 국가적 동의, 다시 말해 선언적 의미로서 존재한 것으로 실질적 효력은 없었던 것이다.
이 ‘임정계승인식’이 중요하게 부각된 것은 1962년의 5차 개헌을 통해서였다. 5·16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는 최초의 헌법前文 수정을 통해, 임정의 정신을 정부수립의 명분인 5·16과 같은 위치로 격상시켰다. 이 ‘임정계승인식’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1987년의 9차 개헌을 통해서였다. 현행헌법의 前文이 “…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수정되면서, 대한민국이 계승한 ‘임정’의 실체는 그 정신을 포함하는 ‘법통’으로 승격되었다. 이것은 임정이 가졌던 역사적 정통성을 재현하여 한국정부를 ‘재건’하였다는 사실에, 국내 정계와 국민들 사이의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목차

Ⅰ. 서론 1
Ⅱ. 정부수립과 임정계승의 표방 6
1. 해방 전후 이승만의 임정인식의 변화 6
2. 제헌헌법의 임정계승 표방 11
1) 헌법초안에 나타난 임정계승인식 11
2) 헌법심의과정의 임정계승인식과 논의 14
Ⅲ. 제1공화국의 임정계승정책의 실제 24
1. 국가적 기억으로서 임정계승정책 24
1) 국가기념일 제정과 특징 24
2) 대통령 기념사와 국회안건에 나타난 특징 31
2. 국가 상징과 포상을 통해 본 임정계승정책 45
1) 국가 상징물 건립 및 지정 45
2) 국가유공자 포상정책 49
Ⅳ. 결론 55
참고문헌 57
부록1. 제1공화국 시기 이승만 담화문 목록 61
ABSTRACT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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