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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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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19號
발행연도
2003.6
수록면
97 - 123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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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陣는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면서 龜趺, 碑身, ?首를 갖추어 건립된다. 이러한 조영 수법은 唐의 영향으로 통일신라 초기에 王陸이나 寺刹 내에 세워진 비를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 꾸준하게 계승된다. 석비는 비신의 받침으로 귀부를 마련하는데 대부분이 1軀이다. 그런데 8세기 후반경 昌林寺를 시작으로 ?臧寺, 法廣寺, 崇福寺에 2구의 귀부를 동일석으로 마련하는 독특한 조영의 雙身頭 龜趺가 나타난다. 현재까지 쌍신두 귀부는 4기가 확인되고 있는데, 모두 사찰 내에 건립되었다. 이들 사찰은 王이나 王室의 願刹로서 왕이나 중앙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쌍신두 귀부는 8세기 후반경에서 9세기 말까지 일시적으로만 조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쌍신두 귀부의 조영은 왕이나 왕실의 후원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이를 치석한 장인 집단이 중앙에 소속되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해준다. 나아가 單身頭 龜趺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쌍신두 귀부를 새롭게 마련한 신라 장인들의 창의적인 조영은 주목되는 점이라 하겠다. 쌍신두 귀부는 9세기 중후반을 지나면서 전국 각 山門에 건립되는 塔碑의 귀부로는 활용되지 못하는 한계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은 쌍신두 귀부의 기능성이나 상징성과 아울러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과제이다.

목차

요약
Ⅰ. 序論
Ⅱ. 雙身頭 龜趺의 樣式과 造成 時期
Ⅲ. 雙身頭 龜趺의 造形的 意義
Ⅳ. 結論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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