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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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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25號
발행연도
2006.6
수록면
147 - 173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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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는 불교계가 위축되면서 승려들에 대한 예우가 이전에 비하여 상당히 떨어졌다. 그래서 불사가 크게 줄어들게 되고, 석조부도와 탑비의 건립이 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조선전기에도 왕이나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거나 상당한 예우를 받았던 승려들은 석조부도와 탑비의 건립이 이루어졌다. 이중에서 대표적인 승려가 已和大師 涵虛堂(l376~1433)이었다. 기화대사 함허당은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불교계에서도 상당한 예우를 받았던 고승이었다. 그래서인지 여러 사찰에 분사리되어 여러 기의 석조부도가 건립되었으며, 건립된 석조부도의 양식이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석조미술사 뿐만 아니라 석조부도의 발전 과정, 조선시대 석조부도 건립 양상과 불교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기화대사 함허당의 석조부도는 봉암사, 현등사, 정수사, 연봉사 등에 분사리되어 건립되었다. 이들 석조부도들은 왕이나 왕실의 지원에 의하여 건립되었으며, 각 지방에 거주한 장인들이 지역적인 특색을 가미하여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기화대사 함허당탑은 고려말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분사리에 의한 석조부도 건립을 계승하여 조선후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의가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들어와 다양한 양식의 석조부도가 건립되는 선행작이 되었으며, 입적한 고승과 사찰과의 관련 정도에 따라 서로 다른 양식의 석조부도가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자료이다.

목차

요약
Ⅰ. 서론
Ⅱ. 조선초기 불교계의 동향과 석조부도의 건립
Ⅲ. 함허당의 생애와 분사리 석조부도의 건립
Ⅳ. 함허당 석조부도의 양식과 건립 시기
Ⅴ. 함허당 석조부도의 미술사적 의의
Ⅵ. 결론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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