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29號
발행연도
2008.6
수록면
41 - 89 (4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송광사가 普照國師 知訥이 주석하면서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졌고, 조선 초기까지 16명의 國師가 배출되면서 고려후기 불교계를 주도한 사찰이었다. 고려시대 송광사는 吉祥寺, 定慧社, 修禪社 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 억불숭유 정책 기조로 불교계가 위축되면서 송광사도 일시적으로 퇴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신도들이 몰려 송광사도 중창과 중건을 거듭하게 되고, 大刹로서의 면모를 유지하며 호남지역의 중심적인 사찰이 되었다. 현재 송광사 출신 16국사 중 9기의 석조부도가 전하고 있는데, 이중에서 7기는 송광사와 그 주변 암자에 건립되었고, 2기는 大原寺와 佛甲寺에 남아있다. 이 석조부도들은 기록과 명문이 남아있어 주인공과 건립 시기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송광사 출신 국사들의 석조부도는 고려중기 이후에 건립된 石造浮屠의 樣式史에서 하나의 主流를 형성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러한 양식은 조선후기 호남 일대 중요 사찰의 부도군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채용된 것으로 보아 지속적으로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국사들의 석조부도는 고려시대 특정 지역이나 사찰을 중심으로 활동한 장인들이 있었으며, 이들에 의하여 치석 기술이 계승되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특히 고려후기 불교계를 주도했던 송광사에는 사원에 소속되었거나 지방 사회를 중심으로 활동한 전문 장인 집단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러나 송광사 출신 16국사의 석조부도와 탑비가 모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일부만 남아있어 전체적인 현황을 파악할 수 없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16국사의 석조부도가 건립되는 시기는 양식사적으로 다양한 변화가 있었고, 고려후기에서 조선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양식들이 채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목차

요약
Ⅰ. 序論
Ⅱ. 石造浮屠의 樣式과 建立 時期
Ⅲ. 樣式 特徵과 樣式史的 意義
Ⅳ. 結論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09-910-014938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