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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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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정치사상학회 정치사상연구 정치사상연구 제12집 1호
발행연도
2006.5
수록면
7 - 32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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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가장 보수적이고 체제유지적인 사상으로 알려져 있는 성리학이 여말선초에 어떻게 혁명적인 이념으로 전환되었는지를 검토하고자 했다. 특히 우왕대에 정도전이 겪었던 정치적 시련을 통해 혁명적 성리학이 탄생되는 역사적 계기를 살펴보고자 했다. 여말선초의 망국과 건국의 정치는 성리학의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사례이며, 어떤 의미에서 ‘사상의 역설’을 발견할 수 있다. 성리학의 이름으로 혁명을 변호했던 정도전의 이단적 성리학은 1375년 대중국 외교를 둘러싼 정치투쟁에서 패배한 뒤 10년간 유배와 유랑생활을 겪으면서 형성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극도의 경제적 곤궁과 모든 인간과계가 단절되는 아픔을 겪었다. 거기에서 그는 성리학이 제시하고 있는 天웬와 인간 운명의 부조리를 절감했으며, 또한 자신의 신분적 장애가 실존적인 것임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사는 전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그들에게 고마움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하여 은거와 혁명의 갈림길에 선 그는 고려의 절망적 정치상황 속에서 성리학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한계인(a marginal man)인 자신에게 성리학은 무엇인지 반문하였다. 그로부터 그는 파브뉴로부터 자각한 파리아로 재탄생했으며, 그의 성리학은 정치화되고 혁명화되었다.

목차

Ⅰ. 문제제기: ‘혁명’과 ‘성리학’의 역설
Ⅱ. 여말선초 신진 성리학자들의 정치적 시련: 우왕 원년의 대외정책을 둘러싼 정치투쟁과 성리학자들의 유배
Ⅲ. 유배와 정도전 성리학의 방황: 「心問天答」에 나타난 천도와 운명에 대한 회의
Ⅳ. 분노, 비관, 초연함, 그리고 결단: 도깨비(「謝?魅文」)와 농무(「答田父」)와의 대화
Ⅴ. ‘유배’의 성리학과 혁명에의 길: 신분으로부터의 초원과 백성의 발견(「消災洞記」)
Ⅵ. ‘파브뉴’의 성리학에서 ‘파리에’의 성리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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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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