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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학회 한국언론학보 韓國言論學報 제47권 5호
발행연도
2003.10
수록면
170 - 193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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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중국 전국(戰國)시대 중엽, 기원전 3-4세기는 언어위기의 시대였다. 커뮤니케이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당시의 시대적 혼란을 언어사용의 혼란으로 이해하였다는 점이라 하겠다.
공자와 순자는 이 문제를 ‘정명’(正名)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였으며, 이를 위해 모든 정열을 쏟았다고 할 수 있다. ‘궤변에 의한 사회적 긴장’이라는 언어위기 시대의 중심부에 ‘대표적 궤변론자라는 부정적 의미공간’을 만들어 후세의 사가(史家)들은 당시 논변가(論辯家)로서 걸출했던 두 인물, 즉 혜시와 공손룡을 가두어 놓았다.
우리에게 궤변자로서만 그들을 이해하게 만든 후세(後世) 사가들의 평가는 옳았는가? 사회적 열린 의미의 관점에서 볼 때 많은 역사적 오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궤변에 내포된 사회적 열린 의미를 추론한다면;
1) 제자백가들은 모두가 다른 학파의 주장은 틀렸고, 자신들의 주장만이 올바른 정치와 삶을 밝히는데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혜시와 공손룡 및 그 일파는 인식논리를 통하여, 모든 주장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자신들의 주장만이 옳다는 것 은 잘못이며
2) 언어의 의미는 사회계약적인 것이다. ‘정명’(正名)은 의미의 통일에 있는 것이다.
3) 혜시와 공손룡 및 그 일파의 형식적 궤변성은 당시 지배계층에서 사용하고 있었던 언어유희에 대한 도전이었다.
4) 그 결과, 혜시와 공손룡은 결론을 도출할 수 없는 궤변을 사회담론으로 제시하였다.

목차

1. 서론
2. 분석 Text 및 연구방법
3. 혜시의 10사(事)와 공손룡 및 그 일파의 21사(事)에 대한 기존의 문자 중심적 해석-닫힌 의미
4. 커뮤니케이션학의 입장에서 본 혜시와 공손룡의 궤변적 명제에 내포된 사회적 의미 - 열린 의미
5. 요약 및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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