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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정신문화연구 2008 가을호 제31권 제3호 (통권 112호)
발행연도
2008.9
수록면
131 - 153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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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청구권관련 사업(‘배상 비즈니스’)를 둘러싼 한일 ‘만주인맥’의 형성 및 결합과 그 역할을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1960~70년대 한국과 일본의 권력의 중심에는 박정희(朴正熙)와 키시(岸信介)를 정점으로 하는 만주경험자들이 있었다. 만주에서 각기 군인, 기업가, 기술자 등 다양한 계층에서 경험을 쌓았던 만주경험자들은 전후 한일 양국에서 이른바 ‘만주인맥’을 구성하여 각기 ‘권력의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들은 한일 ‘배상 비즈니스’에서도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역무배상 방식으로 이루어진 ‘배상 비즈니스’는 일본 기업에 대한 독점적 입찰권과 일본정부에 의한 직접결재가 보장된다는 매우 유리한 조건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은 ‘배상 비즈니스’를 막대한 이익창출기회인 동시에 아시아시장에 대한 재진출의 교두보로 이용하고자 했다. 이에 일본의 기업들은 한국의 배상 비즈니스를 선점하기 위해 수주결정권자였던 박정희와의 직간접적인 교섭통로를 개척하기 위해 ‘만주인맥’을 활용했으며, 박정희 정부의 ‘실세’들을 상대로 앞 다투어 로비활동을 전개했다. 이토츄상사(伊藤忠商事)와 일본공영(日本工營)이라는 두 민간기업의 사례를 통해 보듯이 한일 ‘만주인맥’의 결합 과정은 우선 양국의 교섭통로를 개척하기 위해 만주군 출신의 정치적 ‘실세’와의 비공식적 접촉을 시도했으며, 이어 교섭통로가 확보된 후에는 일본 기업 내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가진 만주경험자들이 투입되는 형태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박정희 정부는 여타의 아시아국가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기술과 노하우, 자금력을 도입하여 산업화와 인프라 건설을 꾀하고자 했으므로 일본과의 국교정상화에 적극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국가적 이익의 이면에는 박정희 정부 ‘실세’들이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고자 했기 때문에 청구권자금에 대한 부패가 초래되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따라서 본고를 통해 고찰한 바, ‘만주인맥’은 난항을 겪던 한일 정상회담에서 ‘만주’라는 공통분모를 활용하여 국교정상화를 이끌어내었으며, 한국국교정상화를 통해 한일 양국이 각기 자국의 목적을 달성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수 있으나, 한일 ‘만주인맥’이 결합되는 과정에서 불투명한 자금운영에 따른 ‘부패’가 수반되는 부정적인 결과도 초래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목차

Ⅰ. 서론
Ⅱ. 한일 ‘만주인맥’ 형성과 결합과정
Ⅲ. ‘배상 비즈니스’의 전개과정과 ‘만주인맥’의 역할
Ⅳ. ‘배상 비즈니스’가 박정희 정부 내부에 미친 영향
Ⅴ. 결론
참고문헌
국문요약
English Abstr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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