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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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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양명학회 양명학 陽明學 제20호
발행연도
2008.7
수록면
229 - 262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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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心隱(1517-1579) 사상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原學原講」은 그가 체포되어 사망하기 직전에 쓴 글이다. 그는 이 글에서 天下와 朝廷에 대하여 당시 자신이 힘을 쏟고 있는 講學의 정당성을 上書하였다. 약 만 여자에 달하는 장편의 논문이지만, 先人의 글이나 文體를 계승함이 없이 하심은 특유의 문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번역문은 고사하고 구체적인 내용소개 조차도 이루어지지 않다. 이에 소고에서는 「原學原講」의 분석을 통하여 하심은의 학문관과 그 학문방법인 講學觀을 살펴 보았다.
講學은 공자 學團이래 지속되어온 儒學의 전통적인 학문방법이다. 특히 명대에 들어와 王陽明의 출현 이후, 양명학적 ‘知的’사회를 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것은 명대의 ‘지적’사회에 새로운 구성원으로 등장한 서민층들에 대해 각자의 상황에 맞는 학문활동의 영역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심은이 이상적으로 추구한 ‘지적’사회는 君臣이 師友를 이루는 토대위에 ‘君臣朋友表裏論’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심은의 ‘知的’사회는 정치사회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현실적 실험이 ‘聚和堂’의 교육활동이었다. 그리고 ‘지적’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강학이었다. 강학의 목표는 ‘공자의 大道’를 실현함이다. 따라서 하심은에게 있어서 강학은 성현의 가르침을 현실의 일상사에 보편화시키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宰相이었던 張居正의 강학탄압에 직변하여 하심은을 비롯한 양명학의 講學者들은 강학의 정당성을 논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특히 장거정은 학문이란 經書에 입각하여 학습하고 체득하면 될 뿐이지, 무엇 때문에 무리지어 虛談을 일삼느냐고 강학을 비난하였다. 이에 하심은은 ‘必學必講’의 당연성을 인류의 인지발달의 역사로서 논증하였다. 그는 강학의 근원을 살펴가면서 인간의 본래모습에 접근하여 갔다. 그는 강학에 대한 인간의 자각 단계를 ‘隱學隱講’ ‘顯學隱講’ ‘顯學顯講’으로 나누고 있다. 이런 단계의 최초에 伏羲氏를 자리매김하고, 孔孟의 시대가 완성기에 위치한다.
‘隱學隱講’의 시기란 아직 강학이 강학으로 인식되지 않았지만, 수면 아래서 강학이 이루어지던 시기이다 이 시기는 伏羲에서 시작하여 堯ㆍ舜ㆍ禹ㆍ湯ㆍ伊尹에 이른다. ‘顯學隱講’의 시기란 배우는 일에 대해서는 通念대로의 인식이 형성되지만, 강론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인간의 自覺이 도달하지 않았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殷나라의 高宗ㆍ傳說과 周나라의 文王ㆍ周公이 거론된다. ‘顯學顯講’ 시기의 특징은, 講學에 대한 自覺이 명확해졌다는 것이다. 공자의 학문활동과 學團의 여러 제자들, 그리고 공자를 계승한 孟子가 주목되고 있다.

목차

【요약문】
1. 들어가며
2. ‘知的’사회의 이상형
3. 必學必講-사물의 근원을 추구하는 정신
4. 認知의역사-隱에서 顯에
5. 나오며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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