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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56
발행연도
2009.12
수록면
59 - 84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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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1일 흥해읍 중성리에서 ‘포항 중성리신라비’가 김헌도에 의해 발견되었다. 냉수리신라비보다 연대가 앞서는 중성리신라비는 신라의 형성ㆍ발전에 대한 영일만 흥해지역의 역사적 역할을 구명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판명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비의 발견경위를 살핀 후 고대 포항의 흥해지역이 신라에서 갖는 역사적 위치를 통일신라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실증적인 역사여건을 통해 고대로 소급 유추하는 연구방법으로 시고하였다.
진한시대 포항지역 남쪽에는 근기국(勤耆國)이 있었으나 북쪽의 소국 형성지역으로 추단되는 흥해에는 국명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흥해지역은 청동기시대의 지석묘와 암각화의 밀집분포지역이라는 사실, 신라 국가 祭場인 中祀 海祭와 독제(瀆祭)를 지낸 고대국가 형성의 중추적인 직할 배후지역의 관방요해처(關防要害處)로서 지증왕 때 彌實城(미실성 또는 미질부성)을 쌓아 근기국의 고현성(古縣城)과 함께 포항 最古의 성이 된 사실, 통일신라시대에 육현(六縣)을 관할했던 큰 고을 義昌郡(구 흥해고을 명칭)의 郡勢 그리고 曲江川을 중심으로 한 비옥한 넓은 농토와 인구가 많은 고을로 성장하여 국가의 조세(租稅)ㆍ공납(貢納)ㆍ역역(力役)을 공급한 최대의 접경 배후지역이 되었던 사실 등으로 小國 형성의 실마리를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이 점은 비록 후대이지만 고대 흥해 고을세의 전통이 조선초기 『慶尙道地理志』에도 이어져 흥해의 인구가 포항지역에서 가장 많았고, 농토는 『慶尙道續撰地理誌』에서 경주와 포항지역에서 가장 넓은 농지를 보유하고 있었던 사실(현재도 같음) 등의 역사환경을 통해서도 추정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발견 경위, 보도 및 신고
Ⅲ. 고대 포항
Ⅳ. 영일만권의 중심지역 흥해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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