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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연구소 미술사논단 美術史論壇 第19號
발행연도
2004.12
수록면
187 - 223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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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카운티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s, 이하 LACMA로 칭함)에 소장된 1868년 조선의 궁중宴享을 기념으로 만들어진 병풍은 특히 왕실에서의 여성의 역할이 부각된 조선 말기 관료사회의 사회적 관계를 알려준다. 이는 또한 조선시대 궁중기록화의 중요한 예라고 사료된다. LACMA 소장의 『戊辰進饌儀軌』(1868) 혹은 戊辰年의 연회에 대한 기록이라는 제목의 연회 병풍과 일치하는 의궤가 목판 도식이 있는 3권의 필사본으로 구성되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무진진찬의궤』에는 1868년 12월에 神貞王后(大王大妃, 1808-1890)의 回甲 기념 진찬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이 행사의 순서는東朝와 內命婦를 위한 內進饌이 왕의 寢殿인 康寧殿에서 6일날 오후에 있었고, 이 행사를 준비했던 관료들을 위한 會酌이 같은 장소에서 11일째 되는 날 행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LACMA 圖屛에는 이 두 宴享을 병풍의 제3폭부터 제7폭에 걸쳐 혼합하여 묘사되어 있다. 제1폭과 제2폭에서는 勤政殿에서 관료들이 陳賀禮를 올리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병풍의 동일 장면을 목판 도석과 비교해 보면 圖屛에는 線遠近法이 훌륭하게 사용되어 殿庭은 뒤로 갈수록 좁아지고 月廊의 안쪽 면이 드러나도록 하였다. 따라서 병풍에 사용된 부감법은 목판 도식의 엄격한 구도보다는 더욱 설득력 있게 보인다. 먹과 채색의 복잡한 사용 또한 공간감과 입체감을 불어넣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된다. 안료의 약90% 정도가 背彩되어 얇은 비단을 투과해 빛나고 있고, 반면에 건물과 인물의 윤곽선은 그림의 앞면에서 그려졌다. 두 번째 장면은 내진찬을 묘사한 것으로 연회는 문을 닫은 채로 몇 개의 품계별로 나뉜 공간 속에서 베풀어졌다. 또한 녹색 비단실로 육각형의 무늬를 장식해 놓은朱簾을 드리워 외부로부터의 시선을 차단, 보호하고 있다. 殿內에 마련된 이 공간은 補階외 다른 공간들과 함께 가장 높은 지위의 공간으로, 대왕대비ㆍ왕대비ㆍ왕비를 위한 곳이었다. 儀軌에 의하면 신정왕후 자신은 대개 왕의 자리였던 ‘五峯屛’ 앞에 앉았다. 궁녀들은 왕후의 높은 존재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寶座를 향해 배례를 하고 있다. 『무진진찬의궤』에는 신정왕후 회갑 기념 진찬도 제작에 참여하였던 金濟淳, 趙在興, 徐淳杓, 柳淵祐, 張東爀, 李漢喆(1808-1880이후), 白殷培(1820-1900), 劉淑(1827 -1873)이 劉慶龍과 全學文의 화가명단이 적혀있다. 처음 네 명은奎章閣 差備待令畵員 화가들로 다른 많은 궁중 기록에도 언급되는 화가들이지만 생애에 관해 남아 있는 기록이 없고, 李漢喆ㆍ白殷培ㆍ劉淑과 같은 화가는 상당히 유명한 궁중화가들이었다.
LACMA 도병에서 기능적으로 흥미로운 부조화를 발견할 수가 있다. 그림은 명백하게 기록화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조선시대 기록화의 전통이라는 것은 한 개인의 인생에서 중요한 행사들을 기록하는 기능을 의미하며 개인의 뛰어난 업적과 사회적인 지위에 대한 기념으로 소중히 여겨졌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그 묘사력이나 미학적 가치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병풍의 형식은 묘사적이고 장식적인, 그럼으로써 미학적인 기능을 암시하고 있다. 淸代 궁정의 중요한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가록화가 상당수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두 가지의 중요한 양상들이 18, 19세기의 조선과 중국의 궁중기록화를 구별해준다. 첫째로는 형식으로, 이때 가장 애호되었던 중국적 형식은 병풍이 아니라 두루마리 그림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중국의 황제는 기록화에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어 조선 왕실의 비도상적인 표현 방식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宴會 圖屛의 분석을 통하여 그림의 기록적 기능과 장식적 가능의 모순 양상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러한 외관상 타협되지 않는 장르들의 결합에 대해서는 사회의 핵심적인 유교적 이념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우홍(巫鴻) 교수가 중국 병풍에 관한 연구에서 그림 안에 그려진 병풍의 다양한 기능에 대해서 논의하였듯이, 병풍은 대부분의 경우 정면관으로 묘사되는 주인공을 에워싸는 ‘틀’이 될 수도 있고, 혹은 공간을 분할하는 건축 구조물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병풍에는 이와 같이 도상을 에워싸고, 위계관계를 만들어내는 두 가지 기능은 모두 발견 된다. 하지만 그림 안에 그려진 五峯屛의 경우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통치자를 에워싸는 역할뿐 아니라 완벽하게 통치자를 대신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나라를 보호하고 天子로서 왕의 儀禮的인 역할은 왕을 다른 인간 형상과 함께 묘사하는 것이 온당치 않게 여겨질 정도로 왕과 신민들의 위계관계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비재현적인 방식으로 왕은 神格化되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신정왕후 역시 비재현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 조선시대 예술과 문화사에 있어서 처음으로 여자가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는 점이다.

목차

神貞王后의 탄신 기념 進饌圖
神貞王后의 삶과 시대
조선시대 記錄畵 역사에 대한 몇가지 소견
조선왕실과 圖屛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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