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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혜진 (숙명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32호
발행연도
2010.3
수록면
159 - 193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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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들어 일제는 기독교계 학교에까지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그 논리는 교육과 종교는 다르며, 신사참배는 국가적 의식이지 종교적 의식이 아니므로 국가의식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기독교계 학교들을 일제에 순응하는 학교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미북장로회선교부는 서울, 평양, 대구, 선천의 네 선교지부에서 8개의 남녀 중등학교를 경영하였다. 1936년 북장로회선교부 회의에서 교육철수가 결의된 이후, 한국인들은 각 지역의 학교들을 인계해 달라고 청원하였다. 특히 서울의 경신학교와 정신여학교에 대해 학교 이사회, 동문회, 경성노회 등 각 단체에서 서울선교지부와 선교부 실행위원회 및 해외선교부에 끊임없이 인계 요청을 하였다.
경신학교에서는 안악 김씨 문중과 협의하여 5개년 대차안 상정한 것이 부결되자, 「경신학교 이사회규칙」을 내세워 학교의 경영권을 방어하고자 하였다. 결국 한국인 설립자를 충원하는 문제가 조선총독부에서 허가됨으로써 학교 인계문제가 힘을 얻었고 김씨 문중이 북장로회선교부에 사례금을 주고 경신학교를 인계하게 되었다. 정신여학교는 경성노회와 동창회가 협력하여 학교를 인수하기로 하였으나 어렵게 되었고, 이종만이 가장 유력한 인계 후보자였는데 해외선교부와의 수 차례 논의 과정에서 이종만측의 제안이 계속 거부당했다. 정신여학교에 대한 여러 번의 인계 노력은 실패하였고, 선교사들이 강제 추방당하게 되면서 학교는 적산(敵産)으로 인수되어 풍문재단으로 흡수되었다.
서울지역 북장로회선교부 교육사업 철수에 따른 학교 인계 과정에서 쿤스, 언더우드 등 교육 현장에 있었던 선교사들은 한국인에게 학교를 인계하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그에 따라 학교 이사회, 동문회, 경성노회 등 한국인들은 학교 인계에 대한 희망을 갖고 대책 마련을 위해 애썼다. 경신학교와 정신여학교의 폐교를 막기 위해 한국인들은 주도적인 활동을 했다.

목차

1. 머리말
2. 신사참배 문제와 사립학교 통제 강화
3. 북장로회선교부의 교육사업 철수 결정과 경신학교 인계 과정
4. 정신여학교의 인계 과정
5. 맺음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Abstract

참고문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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