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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우연 (인하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60
발행연도
2010.12
수록면
35 - 73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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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제사는 일종의 정치적 이론장치로서, 그에 대한 검토는 고대 사회의 정치적 변동과 같은 역사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필수 작업이 된다. 본 논문에서는 고구려 국가제사 중, 왕실 조상제사에 초점을 맞춰, 3세기 이전 상황 및 4∼5세기 이후의 변화와 그러한 변화가 지니는 사회ㆍ정치적 의미, 나아가 의례에서 왕실 시조 ‘주몽’의 위상 변화에 대해 살폈다.
고구려는 3세기까지만 해도 서로 혈연을 달리하면서, 또한 상당한 정치적 자주권을 유지한 나부집단이 존재했다. 따라서 국가제사 전면에는 배타적인 ‘血緣’이 아닌, 포괄적 성격의 ‘地緣’이 강조되었다. 반면 조상제사라는 ‘혈연’ 강조와 차별화를 위한 의례는 여러 나부 집단 내부에서 독자적으로 유지되었다. 왕실조상제사의 경우, 시조묘와 종묘 2중 구조로 전개되었는데, 시조묘는 ‘부여 출자’라는 주몽의 정체성을 공통분모로, 부여출신 세력을 왕실 주변으로 아우르기 위한 장치였으며, 종묘는 신흥 국가권력인 태조대왕과의 혈연적 연관성을 통해 ‘현재’ 왕권의 정당성을 표방하기 위한 장치였다.
4∼5세기에 이르러, 국가제사에서 人鬼계열 제사가 전면에 대두되는데, 이는 국가정치가 ‘地緣’에서 ‘血緣’으로 전환되었음을 시사해준다. 4∼5세기는 강력해진 왕권을 중심으로 고구려 전반에 걸쳐 공동체의식이 확고히 자리매김한 시기로 이해된다. 그러한 공동체 의식을 성립시켜주는 상징적 매개체가 바로 ‘주몽’이었으며, 宗廟, 朱蒙祠, 登高神廟 제사와 같은 가시적인 국가제사행위를 통해 점차 확고해졌던 것이다. 다시 말해, ‘주몽’은 연맹체 세력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확고히 묶어 줄 수 있는 일종의 상상해 낸 상징적 연결고리였던 것이다. 이 연결고리를 매개체로, ‘차별화’와 ‘모방’이라는 사회적 메커니즘의 작동과 함께 구성원들 사이에서 정체성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형성되어 갔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조상제사의 기능과 의미
Ⅲ. 3세기 이전, ‘始祖廟’와 ‘宗廟’ 이중구조
Ⅳ. 4∼5세기 이후, ‘始祖朱蒙’의 전면 등장
Ⅵ.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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