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배개화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현대문학회 한국현대문학연구 한국현대문학연구 제32집
발행연도
2010.12
수록면
473 - 513 (4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해방기(1945.08.15~1948.08.15)에 이태준은 서울에서 결성된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1945.8.18) 산하 조선문학건설본부의 중앙위원장, 그리고 ‘조선문학가동맹’(1945.12.13)의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이들 문화조직들은 좌파와 중간파 문학ㆍ예술가들의 ‘문화통일전선’을 표방하였는데, 중간파였던 이태준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연합에 토대를 둔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임화의 주장에 동조하였기 때문이다. 이태준은 또한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협의된 ‘신탁통치’가 통일민족국가를 수립하는 유력한 방법이라고 판단하교 신탁통치에 찬성하는 입장인 ‘민주주의민족전선’(1946.02.15)에 조선문학가동맹의 대표로 참여하였다. 이후 이태준은 1946년 8월 10일경 월북하여 소련 기행을 하고 돌아온 후 북한에 남기로 결정하였다. 이태준은 북한의 토지개혁이나 문맹퇴치운동을 묘사하는 소설을 집필하고, 북한에서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에 대한 감시자의 역할을 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태준은, 한국전쟁 발발 직전(1950.3)에 발표한 〈먼지〉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ㆍ10선거를 전후한 서울을 묘사하면서 ‘통일 독립국가'를 수립과 관련된 중간파의 역사적 역할이 종결되었음을 시사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해방 직후의 정치, 문화적 배경
3. 해방 직후 이태준의 행적과 문학
4. 이태준의 월북 이후 문학의 특징
5. 결론
〈참고문헌〉
영문초록

참고문헌 (2)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2-810-004152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