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尹京鎭 (경상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31호
발행연도
2008.5
수록면
77 - 110 (3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논문은 고려 말 조선 초 전라도ㆍ충청도ㆍ서해도 지역에서 발생한 僑郡의 사례를 발굴 추출하고, 교군의 설치로부터 환원ㆍ폐지에 이르는 과정을 분석한 것이다.
珍島縣은 공민왕대 昆湄縣에 교우하다가 태종 9년에 海南縣과 합하여 海珍郡이라 하였다. 태종 14년 본도로 환원되었다가 바로 출륙하였고, 세종 19년에 다시 본도로 환원되었다. 壓海縣과 長山縣ㆍ臨淄縣 등 도서 군현들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적조에 실린 廢縣의 연혁과 위치 등을 통해 교군 운영을 확인할 수 있다. 黑山島(榮山縣)는 공민왕 11년 왜적 포로를 바친 공을 감안하여 왜구를 피해 출륙할 때 교우처를 군현으로 승격해 준 사례이다.
長興府는 처음에 道康郡의 修因山城에 교우하다가 우왕 5년에 鐵冶縣으로 이동하였으며, 태조 원년에 속현이던 遂寧縣에 성을 쌓고 정착하였다. 장흥부는 교우 과정에서 일시 寶城郡과 병합된 사적이 보이는데, 「高麗末戶籍斷片」에 보이는 長寶는 이 때 제정된 읍호로 판단된다. 이외에 寶城郡과 靈巖郡 역시 교우를 추정할 수 있다. 高興縣은 우왕 14년경에 兆陽縣에서 교우를 시작했다가 태조 4년에 이를 속현으로 이속받았고, 태조 6년에는 鎭이 설치되었다. 세종 23년 南陽縣과 합치면서 읍치를 荳原縣 지역으로 옮기고 읍호를 興陽으로 바꾸었다.
泰安郡은 문집 자료를 통해 교우가 확인되는데, 공민왕 22년에 瑞山郡에 교우하다가 우왕 9년에 禮山縣으로 옮겼고, 공양왕 2년에 다시 서산군에 성을 쌓고 옮겨왔다. 이곳에는 蓴堤鎭이 설치되었는데, 태종 16년 鎭城을 태안군의 古治로 옮기면서 태안군도 본토로 환원되었다.
白翎鎭은 처음 출륙한 후 文化縣에 교우하다가 鎭將을 폐지하고 문화현의 任內로 편제되었고, 태종 10년에 읍사마저 폐지되어 直村으로 흡수되었다. 세종 9년 백령진 人吏들의 요청에 따라 이들을 永康에 소속시키고 康翎縣이라 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전라도 지역의 僑郡
3. 충청도 및 서해도 지역의 僑郡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12)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2-911-004314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