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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미선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사단법인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한국문학과 예술 한국문학과예술 창간호
발행연도
2008.3
수록면
85 - 109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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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후기 정재의 반주음악에 대하여 전기와 다른 차이점 및 조선 후기 변화 양상을 논의하였다. 먼저 정재를 반주했던 등가의 편성에 대해 살펴본 다음, 정재별 반주악곡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살펴보았다. 반주음악의 형태는 정재의 연행 공간, 향유계층 등에 따른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정재의 반주악곡에 대해서는 궁중의 경우와 지방의 교방정재를 비교하였다.
조선후기 궁중정재의 반주음악은 전기와 같이 당악기와 향악기에 의한 관현합주로 연주되었다. 후기에도 전기와 동일한 형태가 지속적으로 쓰인 사실을 통해서 궁중정재는 500년 가까이 관현합주의 형태로 고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십명의 악공으로 구성된 악대이거나, 5,6명 정도의 작은 편성이거나 관악기와 현악기가 어울어진 형태였다. 다만 예외적으로 처용무의 경우에 한해 18세기에 와서 관악합주의 독특한 형태로 반주되기 시작하였다.
궁중에서 연행된 정재와 달리 궐밖의 관아나 사가에서 행한 교방정재는 삼현육각 즉, 관악합주의 형태로 반주되었다. 피리?대금?해금?장고?북 등으로 편성된 삼현육각은 지역간의 차이없이 전국적으로 통일된 형태로서 조선 후기 교방정재의 반주음악을 대표하였다.
정재 반주악곡에 있어서 조선 전기에는 향당정재의 성격에 따라 향악과 당악이 각각 구별되어 쓰였을 뿐 아니라 정재별로 반주악곡이 각각 달랐으나, 후기에는 향악과 당악의 구별이 없어지면서 향당정재의 반주악에 구별이 없어졌으며 정재별로 달리 연주되었던 반주악의 변별성도 없어졌다. 조선후기의 변화 중 가곡이 정재의 반주악과 창사용도로 수용된 점, 조선말에 정재반주악으로 쓰인 보허자령?여민락만?여민락령?향당교주를 총괄적으로 지시하는 원무곡으로 획일화된 점이 특히 주목된다.

목차

1. 서론
2. 조선 후기 정재의 반주형태
3. 조선후기 정재반주의 악곡
4. 결론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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