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경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저널정보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선교연구원 선교와 신학 선교와 신학 제21집
발행연도
2008.2
수록면
97 - 129 (33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오랫동안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자들에게는 선교 사상도 없었고 선교활동도 없었다는 것이 중론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 견해가 과연 옳은가? 본 논문의 목적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종교개혁자들에게 선교가 있었는가?”라는 오래 된 질문을 다시 검토하는 것이고, 둘째는 종교개혁자들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교회의 선교 사명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특별히 필자는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깔뱅의 선교 사상과 활동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초기 프로테스탄트에게 선교가 있었는가 하는 문제를 정당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프로테스탄트들이 살았던 그 시대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만 한다. 16세기 프로테스탄트들의 일차적 관심은 생존 문제였고, 로마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로테스탄트가 유럽 밖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로마 가톨릭교회와 비교해 볼 때,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선교를 수행할 기구와 수단도 갖추지 못하였다. 이런 16세기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왜 초기 프로테스탄트들이 선교에 열정적으로 나서지 못했는가 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상황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자들에게 선교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깔뱅은 기독교 세계 안에서 개혁 신앙을 전파하는 것에 일차적 목표를 두었으며, 이것이 곧 선교라고 믿었다. 깔뱅에게 가장 중요하고 일차적인 선교의 장은 제네바였다. 그는 제네바에 하나님의 정치, 곧 신정 정치를 확립하고자 했으며, 컨시스토리(Consistory)와 종합 구빈원 제도를 통해 이 도시를 ‘가장 완벽한 그리스도의 학교’로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깔뱅은 제네바를 넘어서서 조국 프랑스의 선교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온 유럽에 개혁 신앙을 전하기 위해 모든 방면에서 최선을 다했다. 1559년 세워진 제네바 아카데미는 유럽 전역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를 양성하는 요람이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깔뱅은 ‘유럽의 복음 전도자’가 되었고, 제네바는 유럽의 ‘선교 중심 기지’가 되었다. 깔뱅은 제네바 개혁교회의 선교 노력을 격려하고 지도한 프로테스탄트 개혁자였다.

목차

논문 초록
Ⅰ. 들어가는 말
Ⅱ. 종교개혁자들의 선교관을 둘러싼 논쟁
Ⅲ. 깔뱅의 종교개혁과 유럽 선교
Ⅳ. 나오는 말
참고 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9)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3-235-001729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