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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강병희 (충북대)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78號
발행연도
2013.6
수록면
31 - 6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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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사 홍법국사 실상탑은 羅末麗初의 다른 부도들과는 달리 8각의 탑신이 球形으로 조성되었다. 횡폭이 넓은 편구형 탑신에는 상, 하에 연판이 장식되고 두 줄의 끈 장식이 십자 형태로 중앙 4면에서 만나 그곳에 화문이 장식되는 모습은 불탑 상륜부의 복발과 유사하다.
이러한 형태는 석탑 상륜부의 복발형에서 착안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상륜부 복발은 원래 인도 불탑의 복발형 탑신에서 비롯되었고 석굴에 조각, 혹은 부조된 불탑에서는 일찍부터 구형의 복발이 보이며 이들을 모방한 사리기 등이 있으므로 넓게 보아 인도 스투파의 복발형 탑신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둘려진 끈과 화문도 인도 스투파에 봉헌 장식되는 꽃 타래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겠다.
그러나 좀 더 직접적인 기원은 중국 남종선 혜능의 제자인 南陽 慧忠국사(?-775년)의 ‘無縫塔’이다. 그는 당 현종, 숙종, 대종 3대에 걸쳐 황제의 초청으로 장안에 머무르며 남종선을 북방 지역에 전파시켰다. 그는 3조 僧璨까지의 능가종, 4조 道信과 5조 弘忍의 동산종, 즉 천태와 삼론의 영향이 큰 북종선의 입장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다.
이런 그의 과도기적인 선사상은 馬祖道一(709-788년)을 비롯한 혜능의 제자, 법손들과 밀접한 교류를 하였고, 특히 仰山慧寂(807-883년)은 혜충국사의 圓相을 활용하는 가르침을 계승하여 ?仰宗을 열고 있음을 볼 때 신회 이후 마조도일의 문하가 번성하기 이전 시대에 영향력을 발휘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송대 이후의 공안집에는 혜충국사의 ‘무봉탑’에 관한 화두가 남아 있어 황제가 그의 제자 탐원응진을 통해 理와 事, 性과 相이 둥글어 꿰맨 자국이 없는 탑을 조성했음을 알 수 있고 모습은 1721년 탑을 중수했던 ?愚謐선사의 시에서 둥근 형태였음이 확인된다.
정토사 홍법국사는 정토사 法鏡대사 玄暉(879-941년)의 제자로 정토사에 주석하였는데 이 절터에는 법경대사와 홍법국사 탑을 포함해 원래 3 기의 卵形 부도가 있어 주민들이 이를 ‘알독’이라 불렀다고 한다. 법경대사 탑비에는 그가 성주산문의 무염과 청원행사의 법맥을 이었으면서도 유독 남양 혜충국사를 자신의 모범으로 삼아 따르고 있음을 전해주는데 자신과 제자인 홍법국사탑이 둥근탑신을 보이고 있어 ‘무봉탑’의 영향임을 알 수 있다. ‘무봉탑’은 본래 마음, 여래장, 불성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선종에서 원상과 구형이 절대 세계, 진여불성, 본체자성을 의미하는 것과 상통한다.
결국 홍법국사탑의 구형탑신은 멀리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씨앗인 사리를 담은 불탑의 복발, 가깝게는 여래장, 진여불성, 본체자성을 의미하는 ‘무봉탑’에서 기원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로써 구형탑신은 불교의 발달과 함께 당대에 이르러 오랜 복발의 상징성에 선종적인 새로운 의미를 더하게 되었던 것이다.

목차

Ⅰ. 서론
Ⅱ. 정토사 홍법국사실상탑의 양식과 球形 塔身
Ⅲ. 禪宗 浮屠의 球形 塔身 출현
Ⅳ.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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