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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문용식 (전주대)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71輯
발행연도
2014.7
수록면
69 - 114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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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영 환곡은 감영의 비용을 조달하기 위하여 운영한 환곡으로 조선후기의 감영 재정에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감영 환곡은 초기에는 별회(別會)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는데, 이는 호조 환곡인 원회(元會)에 대응하는 이름이었다. 또한 감영곡 · 영곡(營穀)이란 이름으로도 존재했다.
감영 환곡인 별회는 호조 환곡과는 달리 감사가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서 조정에서 환곡을 점검할 때에도 감영곡은 점검 대상이 아니었다. 또한 흉년이 들었을 때에 환곡을 탕감하는 경우, 반드시 ‘별회’라는 명목을 분명히 하여 원회 혹은 국가 보유 곡물과는 구별하였다. 비용 조달을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흉년이 들어도 탕감하지 않으려고 했고, 보유한 총량을 모두 나누어주는 진분(盡分)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의 시기에 환곡의 총량은 약 1천만석으로 유지되고 있었는데 전국의 감영곡은 약 178만~210만 석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18세기에 들어서 환곡의 종류가 다양해지자 조정은 비변사를 통하여 환곡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별회에 대한 보고를 강화하자 감사는 별회를 떼어내어 새로운 환곡을 만들어 감영의 재정에 활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군교(軍校)·영속(營屬)의 급료를 위한 보군고곡(補軍庫穀) · 영고곡(營庫穀)이라든지 흉년을 대비한 진휼고곡(賑恤庫穀) 등이 그것이다. 또한 충청도의 경우, 감사가 감영의 비용 부족을 호소하자 조정에서는 국가 보유 곡물의 이자를 감영에 지급한다거나, 국가 보유 곡물을 감영 환곡으로 만들어 재원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19세기 초반에 전체 환곡은 큰 변동은 없었지만 흉년에 대비한 환곡은 감소하고 있었으며, 비용에 활용하는 환곡은 증가하고 있는 추세였다. 감영의 비용을 담당하고 있던 감영 환곡도 증가하고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감영 환곡의 창설과 액수 변화
3. 18세기 후반 감영 환곡의 구조
4. 19세기 전반의 감영 환곡의 변화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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