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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성익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17호
발행연도
2015.3
수록면
265 - 29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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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전기 왕비 3인의 태실에 대한 연구이다. 신라시대부터 간헐적으로 전승되어 온 장태습속은 조선시대에 들어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재위한 모든 王과 王孫들의 태실이 설치되었다. 이 중에서 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아기태실에 많은 석물을 더하여 나말여초기의 八角圓球型浮屠와 같은 중앙석물을 설치하고 주변에는 왕릉의 난간석과 같은 형태의 석물을 더하여 가봉태실을 조성하였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조선전기의 일부 왕비에게 이러한 가봉태실을 조성하는 예가 확인되고 있다.
태실이 조선후기로 오면서 관리의 소홀로 붕괴되거나 李王職에서 西三陵域으로 이봉하면서 왕의 가봉태실이 인위적으로 대부분 파괴되었고, 소헌왕후와 폐비윤씨의 태실도 파괴되어 원형을 추정하기가 어려운 정도이다. 정희왕후는 가봉되었는지, 아기태실로 남은 것인지도 명확히 연구되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연구자간에 왕비의 태실지 위치가 다르고, 태실 주인공도 혼선이 있어 왔으며 문헌 간에도 동일한 태실을 다른 왕비의 태실로 기술하는 경우도 있어 왔다. 그리고 왕족이 아닌 士大夫家출신의 딸들이 어떻게 경북 영주 소백산, 강원 홍천 공작산, 경북 예천 용문사에 각기 장태되었고, 왜 이 지역이 장태지로 선정되었는지도 규명되지 않았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문헌과 고고자료를 바탕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왕비 태실의 文獻資料 검토
Ⅱ. 왕비 태실의 考古資料 검토
Ⅲ. 몇가지 異說의 재검토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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