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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허태용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1호
발행연도
2015.11
수록면
145 - 17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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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조선왕조의 국호 결정 과정을 고려 말 이래의 역사적 전개 과정 속에서 살펴본 연구이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이성계를 국왕으로 옹립하며 수립된 새 왕조는 고려 말 이래 동아시아 질서의 급격한 변동 속에서 자신의 위상과 위치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했다. 무엇보다 중원의 유일한 지배자가 된 명나라와의 관계 설정은 새 왕조의 안정적인 기반 조성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처리되어야 할 사안이었다. 하지만 최영의 요동 공벌 추진 이래 악화된 명나라와의 관계를 평화적으로 안정시키는 일과 새 왕조수립의 대내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새 왕조의 국호를 결정하는 문제 역시 이러한 과제 중에 하나였다. 무엇보다 새 국호를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명나라의 만족과 동의를 이끌어내야 할 뿐 아니라 자국의 역사 속에서 새 왕조의 독존적 위상과 가치도 함께 드러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했기 때문에 국호의 결정은 그 자체가 매우 어려운 정치적인 과제였다. 새 왕조의 건국자들은 홍무제에게 조선과 화령의 두 가지 후보를 올렸는데 이는 최종 결정권자로서의 홍무제의 정치적 위상을 고려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면에서는 두 가지의 후보 중에서 조선이 선택될 수 있도록 치열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대내적으로는 조선이라는 칭호에 기자와 단군 모두의 후계자라는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정작 명나라에게 보고할 때는 오직 기자의 후계자라는 의미만을 부각하였다. 이는 홍무제와 이성계의 관계를 주 무왕과 기자의 관계로 유비함으로써 명나라의 거부감을 불식시키고, 명나라에 대한 새 왕조의 사대적 자세를 극대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명나라 측에서 보기에도 큰 문제는 없었기 때문에, 홍무제는 새 왕조가 원한 대로 조선이라는 칭호로 최종 결정하였다. 이로써 명나라와 새 왕조 조선은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으나, 이는 시작이었을 뿐 앞으로의 상황 전개에 따라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었다. 특히 국호를 결정해준 홍무제가 마땅히 뒤따라야 할 誥命과 印信을 보내지 않고 있었다는 점은 새 왕조와 이성계를 여전히 경계하고 있는 명나라 측의 기본적인 자세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표전 문제로 현실화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원 · 명 교체기 동아시아의 정세와 고려
3. 새 왕조의 과제와 조선이라는 국호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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