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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42호
발행연도
2015.3
수록면
85 - 116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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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그 선교가 시작(1908년)된 이후 재일대한기독교회(KCCJ)의 역사 속에서 한국에서 파송되어 온 파견목사의 지위가 목사를 받아들인 측, 즉 입수자 측인 KCCJ와 파견자 측인 한국교회(장로교, 감리교 등)에서 각각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고찰하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KCCJ 역사를 개괄적으로 살펴본 후 세 가지의 시대구분, 즉 ‘선교 시작부터 재일본조선 기독교회의 성립까지(1908∼1934년),’ ‘재일본조선기독교회의 성립부터 KCCJ의 성립까지(1934∼1945년),’ ‘KCCJ의 성립 이후(1945년∼)’로 나누어 한국에서 파송된 파견목사의 지위부여에 관해서 고찰하고자 했다. 본 연구가 이용한 주된 자료는 KCCJ 및 한국교회 측의 회의록이나 기독교계 신문의 기사 및 미국·캐나다 선교사들의 보고서 등이다.
고찰한 결과, 장로교의 경우 1917년 이후 재일조선인 선교를 위해서 파견한 목사에게 ‘전도목사’라는 지위를 부여하고 있었지만 해방 후 1960년대 중반부터 ‘선교사’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을 확인하였다. 한편 감리교는 일관되게 ‘선교사’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이런 차이가 1925년부터 재일조선인 선교를 담당하게 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에도 반영되었다. 즉 공의회에서는 기본적으로 ‘전도목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지만 감리교에 소속한 이들이 ‘선교사’라는 용어를 사용한 사례도 있었다. 한편 1934년에 창립된 재일본조선기독교회(KCCJ의 전신)는 조선에서 파견된 목사들을 ‘선교사’와는 구별된 ‘목사’로 지칭하고 있었다.
해방 후 KCCJ는 선교 60주년(1968년)을 맞이했을 때부터 한국교단의 파견 목사를 ‘선교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재일본조선기독교회와는 달리 KCCJ가 한국의 파견목사에게 ‘선교사’라는 지위를 부여한 요인으로는 한국 장로교 각 교단들이 ‘선교사’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과 KCCJ 스스로 독립교단으로 자기인식을 심화해 나갔기 때문이며, 또한 KCCJ가 선교사를 받아들인 배경으로 한국교회 측의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의 고조와, 독자적으로 개척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인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부족한 CCJ 측의 상황이 맞물렸던 것을 확인하였다.

목차

Ⅰ.머리말
Ⅱ.KCCJ 역사의 개요
Ⅲ.선교 시작부터 재일본조선기독교회의 성립까지(1908∼1934년)
Ⅳ.재일본조선기독교회의 성립부터 KCCJ의 성립까지(1934∼1945년)
Ⅴ.KCCJ의 성립 이후(1945년∼)
Ⅵ. 맺음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日文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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