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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허원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56호
발행연도
2015.8
수록면
41 - 82 (42page)
DOI
10.15299/jk.2015.8.5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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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김씨가는 전라남도 영광에 400여 년간 세거 해 온 연안김씨 외간종 중의 종가이다. 19세기 후반 이후 연안김씨가는 활발한 경제활동을 통하여 대지주로서의 경제적 기반을 확보해 나갔다. 이 시기 연안김씨가는 전답의 매득과 지주경영, 식리활동을 벌여 나갔으며, 이를 통하여 축적된 재산은 이후 연안김씨가가 지역의 유지이자 문중의 종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경제적인 기반으로 자리하여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연안김씨가의 토지 매득양상은 기본적으로 전답을 집중적으로 매득함으로써 농업경영을 확대해가는 당시의 일반적인 지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매득은 지주경영의 중심이었던 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19세기 말 이후, 특히 1900년대에 집중되고 있다. 이 시기에 연안김씨가는 매우 공격적으로 토지를 획득하여 본격적인 대지주의 지위를 획득하는 등 급속한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 매득을 통한 토지집적이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연안김씨가의 농업경영 양상이 변화하였다. 가작의 비중은 1890년대 이후 급격히 감소하고 소작의 비중이 급증하였다.
연안김씨가에 전답을 방매하던 이들은 대체로 소규모 농지를 보유하고 이를 경작하여 생계를 유지해 가던 빈농 또는 소농들이었다. 이들은 당시 물가폭등과 결세상승 등 사회경제적 상황의 악화 속에서 세금의 납부와 생계의 유지를 위하여 자신의 토지를 방매할 수밖에 없었으며, 소작농으로 전락해 갔다.
다른 한편으로 연안김씨가는 활발한 식리활동을 통하여 이윤을 창출하였다. 동시에 채권의 회수로써 소농과 빈농들의 토지를 획득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 연안김씨가는 선영과 제사를 운영하기 위하여 다양한 문중계를 조직하여 운영하였다. 문중계의 契錢은 식리활동과 토지매득의 주요 재원이었다.
당시의 연안김씨가는 관료이자 지역 유지로서의 신분적 배경을 지녔음에도, 경제외적 강제를 통한 경제활동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매득을 통한 전답의 집적과 식리활동, 소작을 통한 농업경영 등의 경제활동은 철저하리만큼 경제적 계약과 그 실현을 통하여 이루어 나가고 있었다. 반면 경제활동을 위한 재원의 마련이나 목적에 있어서는 종가로서의 지위가 적극반영되었다.
이와 같은 연안김씨가의 지주경영은 조선후기 ‘종가형지주’의 성격과 일제강점기 전근대성을 극복한 사례로 제시된 ‘전북형지주’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조선말기 연안김씨가의 지주경영은 조선후기의 사회경제적 기반위에서 성립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근대지주로의 속성과 전망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 의의를 둘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매득을 통한 토지소유의 확대
3. 지주경영의 양상
4. 식리활동의 확대
5.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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