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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천우 (서강대학교)
저널정보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강인문논총 西江人文論叢 第46輯
발행연도
2016.8
수록면
133 - 168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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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신라 상고기 지도로갈문왕의 활동을 중심으로 그가 왕위 계승을 할 수 있었던 動因을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지도로가 갈문왕에 책봉된 배경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존에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마립간 즉위조를 근거로 소지마립간의 ‘再從弟’로서 갈문왕에 책봉되었을 것이라고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내물마립간 즉위 이후 갈문왕 책봉의 변화상을 검토한 결과 지도로는 실제로는 소지마립간의 5촌 당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지마립간은 지도로를 갈문왕에 책봉함으로써 대외 관계의 변화를 도모하였다. 이를 위해 假혈연관계인 ‘재종제’를 상정하여 갈문왕 책봉 요건을 맞추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소지마립간은 고구려의 내부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지도로를 갈문왕에 책봉함으로써 5세기 후반 친고구려 노선으로의 전환을 꾀하였다. 이는 기존에 백제를 이용한 중국 남조와의 조공 루트 개척에 대한 수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구려를 통해 북조의 북위와의 교류를 꾀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대외적으로 남조의 남제가 내부 반란을 겪는 등의 혼란을 겪고 있었으며, 멸망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노선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도로갈문왕이 주도하는 친고구려 노선에 대해서는 반발 세력들이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를 반영하는 기사가 소지마립간 말년의 기사로 파악된다. 그러나 지도로갈문왕은 소지마립간 사후에도 친고구려 노선을 견지하며 결국 왕으로 즉위한 이후인 502년과 508년 북위에 조공사를 파견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이어지는 한화 정책 역시 북위 효문제가 추진했던 정책의 수용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지도로갈문왕의 적극적인 대북위 외교 정책은 502년 조공사를 파견한 이듬해 국명과 왕호를 제정하는 등의 정책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503년 10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왕을 칭할 수 있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503년 10월의 사건은 대중국 외교에 있어 공식적인 국가명과 왕호를 선포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지도로의 갈문왕 책봉 요인
3. 지도로갈문왕의 친고구려 노선과 왕위 계승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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