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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정화 (경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36집
발행연도
2016.10
수록면
124 - 145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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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지리산유람록을 통해 ‘지리산 청학동’에 투영된 조선조 문인의 공간 인식을 살펴보았다. 본고에서의 지리산 청학동은 경상남도 하동군 쌍계사 뒤쪽 불일폭포 일대를 일컫는다. 조선시대 지리산 유람은 최고봉인 천왕봉과 청학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유람자의 대부분이 남명학파 문인이었다. 이는 조선시대 수백 년간 청학동에 투영된 공간 인식은 결국 남명학파 문인의 청학동에 대한 공간 이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리산 청학동에 대한 인식은 고려시대 李仁老를 비롯해 앞 시대 선현이 청학동으로 인식했던 공간 의미를 반복해서 확인하는 과정으로 나타났다. 특히 임진란 이후 이곳으로 발길이 잦았고, 이는 조선후기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대개 청학동 공간보다는 청학동의 신선으로 전해지는 崔致遠에 대한 관심이 유람자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조선조 문인들은 최치원에 투영된 神仙的 이미지를 통해 잠시나마 이곳에서 현실의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중 조선시대 실천적 지식인이었던 曺植이 이곳으로 유람하여 보여준 공간 인식은 독특하였다. 초월의 공간 청학동에서 도리어 현실적 지식인의 自意識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행위는 이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사실 동일한 장소를 찾아왔음에도 이상향이 아닌 그 속에서 현실적 자의식을 강조한 남명의 공간 인식은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이었다. 그러나 이후 남명학파 후학에 이르러서는 남명의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청학동에 새로운 공간 이해가 형성되었다. 특히 급변기인 19~20세기 남명학파 문인들은 위기의 시대에 지역의 師表인 남명을 갈구하게 되었고, 그의 정신과 가르침을 扶持하고 계승하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백 년간 남명의 가르침이 전승되어온 청학동도 부상하게 되었다. 결국 지리산 청학동은 이들에 의해 최치원의 공간에 조식의 공간적 의미가 더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목차

국문요약
Ⅰ. 문제 제기
Ⅱ. 지리산 청학동에 투영된 공간 인식
Ⅲ.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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