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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한문학회 한국한문학연구 한국한문학연구 제71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85 - 11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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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세기 江右地域에서 활동했던 蘆沙學派의 首長인 老柏軒 鄭載圭가 1887년 8월의 지리산행에서 남긴 「두류록」을 통해 그의 ‘일생’에서 이 유람이 갖는 의의를 살폈다. 당시 강우지역은 노사학파 외에도 性齋學派와 寒洲學派가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강우학자의 지리산 유람은 이들 학파 간 교유의 場이었다. 그러나 노사학파는 두 학파에 비해 출발이 늦었고, 문인의 숫자도 월등히 적었다. 따라서 정재규는 강우지역에 노사학파를 확산시키는 것이 일생의 과업이었다. 1887년의 지리산 유람은 그의 학문적 여정에서 분명한 分岐가 될 만큼 다분히 의도된 것이었다. 정재규는 기정진의 문하에 든 지 10년 만에 노사학의 핵심을 전수받았다. 스승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문집 간행과 문인 간의 강학을 통해 강우지역 내 노사학의 심화와 확산에 전력하였다. 특히 지리산행이 있기 1년 전에 강우지역을 풍미했던 두 학파의 首長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들 학파 내에서도 스승의 문집을 간행하고 강학을 통해 학문을 확산하는 등의 활동이 성대히 전개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정재규는 강우지역 노사학파를 아우르는 지리산행을 감행하였다. 그의 지리산행은 동시대 여타 산행과 달리 오로지 노사학파 인물만으로 이루어졌고, 코스를 에둘러서라도 동문이나 문인의 집을 방문해 우의를 다지는 행보를 보였다. 그의 지리산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승 기정진’으로 이루어졌다. 「두류록」은 1887년 봄 꿈에서 ‘孔子가 泰山에 오르지 않았다면 후학들은 어찌 했을까?’라며 자신을 꾸짖는 스승의 질문에서 시작하고, 하산 후 그 답을 얻는 것으로 끝맺는다. 강우지역에서 노사학파를 결속시키고 학문적 심화를 위한 산행이었으므로 스승을 중심에 둘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당시 강우지역은 서세동점의 급박한 정세 속에서 지역의 師表로서 南冥 曺植의 학문과 정신을 추숭하는 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리산 유람에서 남명의 유적지 덕산을 필수 코스로 넣어 진행한 것이 이에 해당하며, 남명 관련 기행시가 쏟아져 나오는 현상도 이러한 흐름을 방증하였다. 정재규 일행은 유람 내내 남명을 스승보다 더 많이 언급하고, 일화나 작품 등을 인용하여 관련 유적에서 남명을 회고하였다. 이는 노사학파가 강우지역 내의 이러한 변화를 적극 수용함으로써 지역 내에서 학파의 위상을 강화하는 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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