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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41호
발행연도
2021.3
수록면
45 - 93 (49page)
DOI
10.31218/TRKH.2021.3.1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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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목종과 현종 때 실시된 사면과 은전 등을 법제나 의례 분야에 머물지 않고 정치 방면으로 넓혀서 검토하였다. 굉장히 혼란스럽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 실시되었던 경우가 많아 전과 다른 양상을 띠었기 때문이다. 앞선 성종대 것들과의 비교를 통해 특징을 파악하였다.
먼저 목종대 사면을 활용해 정국을 운영하는 기조는 여전했다. 다만 성종은 책봉 받은 뒤 베풀었으나 목종은 하지 않는 대신 호경(서경) 등지를 행차했을 때 실시하였다. 외교 노선을 새롭게 모색하려는 의도였다.
부가된 은전을 통해 추진하려는 정책을 미리 제시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조세 감면이나 문무관 승급 같이 항상적인 것 외에 새로운 요소들이 제시되었다. 즉 승관의 승급, 음직의 제수 등이 처음 실시되면서 제도화의 계기가 되었다. 과거 불합격자의 관직 제수는 성적이 아닌 은혜로 급제시키는 은사제로 이어졌다. 잡학생의 경우 서경의 학생들까지 확대해서 관직을 제수하는 사례가 되었다. 이로써 관료층이 지배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었다. 이는 유교주의 교화의 확대와 함께 내부갈등을 초래하는 요인이 되었다.
사면과 수반된 은전의 내용과 성격 등이 당시 추진된 정책의 방향 등을 미리 제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심지어 내부 갈등으로 정권의 몰락까지 초래한 요인 등을 낳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비중이 결코 적지 않았다.
강조의 변란으로 등극한 현종은 목종의 시해와 거란의 침입이라는 내우외환의 혼란 속에서 체제의 안정과 민심 수습을 위한 시책들을 서둘러 단행해야 했다. 이에 사면과 은전을 종종 베풀며 적극 활용하였다.
실시 동기면에서 전과 달리 왕실 의례의 비중이 높아졌다. 서경 등지를 행차했으나 실행하지 않았다는 점도 특이했다. 목종대 추락되었던 왕실의 위상을 회복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행한 결과로 보인다.
사면 대상의 범위에 역사상 처음 공죄 도형 이하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는 중국의 공·사죄를 구분하는 형정 체계를 수용한 것이다. 공무 처리에 사사로움의 개입 여부를 가려서 처벌하는 것으로 그만큼 관원들의 업무처리 분야가 넓어지고 중대해졌음을 의미했다. 여기에 「월령」에 의거하여 감옥의 죄수까지 돌보는 여수를 정식으로 시행했다. 은전에서는 초창기 통상적인 것뿐만 아니라 과거의 폐습을 척결하는 정책도 포함시켜 베풀기도 했다. 중간 과도하게 행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나치지 않도록 절제하는 방향으로 운영되었다.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형정 체계를 정비하여 정교하게 운용했던 것과 더불어 쇄신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진력했다. 그런 점에서 현종대 사면과 부가된 은전 역시 그 의미가 작지 않았다.
목종·현종대 사면은 어느 때보다 당면 과제의 해결을 위한 정책과 긴밀히 연결되어 실시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목종대 사면과 은전 실시의 내용과 그 성격
Ⅱ. 현종대 실시된 사면과 은전의 특징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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