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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빛나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 역사문화연구 제70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15 - 25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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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거란과 고려의 조공책봉관계 속에서 나타난 사절왕래 중에서 거란 동경과 고려국왕 사이에 나타났던 사행을 분석한 글이다. 거란과 고려사이의 사절 왕래를 통해 지금까지 황제가 파견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동경사에 대해서 재검토하고, 동경사의 파견의 목적과 특징을 분석하고자 했다. 동경사는 거란이 고려에 파견한 사행 중에 2번째로 많은 횟수로, 총 35차례 파견되었다. 다만 고려는 거란에 총 10차례 동경사를 파견하였지만, 거란에서 고려로 파견한 사행의 명칭이 回禮使 혹은 回謝使이기 때문에 고려에서 보낸 답례차원에서 파견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동경사는 거란 황제와 고려 사이에 나타났던 외교문서 형식과 다른 ‘致書’ 형식을 통해 대등한 관계에서 사행이 오고 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동경사의 파견에는 거란 동경의 중요성을 들 수 있다. 처음에 거란동경은 발해를 멸망시키고 그 잔존세력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지만, 고려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거란 동방을 책임지는 동쪽의 수도역할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동경유수는 동경의 행정권과 군사권을 가져 대부분 거란인으로 임명되었고, 특히 그중에서도 상당한 권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동경사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초반기에 거란 조정과 고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로 활용되었다. 이를 통해 동경유수와 고려국왕 사이에서는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되었다. 특히 사적인 교류도 나타나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양국 조정의 교섭창구 역할과 양국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양국 간의 동경사는 거란의 외교제도와 오경제를 답습했던 금에서도 나타나는데, 금대의 동경사 또한 거란과 비슷한 사행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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