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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변은진 (방송대)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아연구 아세아연구 제60권 제2호(통권 제168호)
발행연도
2017.6
수록면
538 - 567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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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일본인 이소가야 스에지는 1930~40년대에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노동운동사건에 연루되어 약 9년간 식민지 조선의 감옥생활을 하고 8.15와 함께 귀국한 후에는 도쿄에 거주하면서 ‘북한 민주화와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문필활동을 전개했던 인물이다.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이소가야 스에지의 삶에서 식민지 조선과 전후의 한반도라는 공간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90세를 넘게 살았던 그가 재조일본인으로 살았던 기간은 약 20년 정도이다. 처음 조선주둔 일본군으로서 한반도에 발을 디뎠던 그는 분명 식민자이자 가해자로서의 출발이었다. 하지만 군 제대 후 조선에 남아 일본인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조선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노력한 세월은 피식민지인을 위한 저항자로서의 경험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해방전야’ 즉 일제의 패망이라는 국면을 눈앞에 둔 이소가야의 심경이 독립과 건국을 준비하는 다른 조선인 동지들과 같을 수만은 없었다. 조선인의 ‘해방’이란, 재조일본인 노동자로 살아온 이소가야의 입장에서는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본국으로 귀환해야 하는 현실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했다. 또한 앞으로 자신은 패전한 일본사회의 과제와 거기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함을 의미했다. 그는 수많은 일본인과 달리 일제의 패전과 ‘천황’의 항복 선언을 ‘전쟁 상대국 인민과 자국 국민의 비극’으로 느꼈다. 여러 저술들 속에서 드러나는 귀환의 잔혹한 체험을 둘러싼 이소가야의 인식을 보면, 그가 노동운동이나 공산주의운동에 참여했던 사상적 배경의 기초에 강한 휴머니즘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귀환 활동을 주도한 과정과 전후의 문필활동에서도 이 휴머니즘이 강력하게 발휘되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재조일본인 귀환자들이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듯이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던 것, 일본 군국주의와 무모한 전쟁에는 반대하면서도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의 역사는 반성하지 않는 것에 대해 꼬집어서 비판하고 있다. 38도선 이북의 함흥에서 8.15 직후 조선사회의 혼란을 경험하고 똑 같이 ‘탈출’이라는 고난의 경로를 거쳐 귀환한 이소가야 스에지의 경우, 전후 일본사회 내에서 ‘피해자 인식’에 갇혀 있지만은 않았던 독특한 인물이었다.

목차

Ⅰ.머리말
Ⅱ. 이소가야 스에지의 삶과 기억
Ⅲ. 이소가야가 겪은 ‘해방전야’와 8.15
Ⅳ. 38이북 일본인의 귀환 체험에 대한 소회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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